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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May 04. 2023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에 담긴, 자유

 어릴 적부터 두 개의 로망이 있었다. 어른이 되면 꼭 이루어야지, 하는 꿈을 종종 꾸곤 했다. 옷가게 주인이 되는 것과 아파트에 사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때 장래 희망을 적어 낼 때면 선생님이라고 적었는데, 사실은 옷가게 주인이 되고 싶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였을까. 옷가게 주인이라고 쓰면 안 될 듯했다. 어른들이 자주 말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적었다.


 초등학생 때 옷이 많지 않아서 몇 벌을 번갈아 입고 다녔다. 예쁜 옷을 입는 친구를 많이도 부러워했다. 어린 마음에 옷가게 주인이 되면 예쁜 옷을 마음껏 입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이 꿈은 중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옷가게를 차리는 일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있다는 말을 줄곧 들었으니 손기술로 먹고사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이러한 생각을 막연하게 했을 뿐 구체적으로 미래를 그리지 못했다. 꿈이 없는 고교생활이었다.


 아파트에 살고 싶은 로망은 부러움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주택에 살았다. 주택도 갖가지여서 멋진 집이 있는가 하면, 시골 농가주택도 있다. 마을에 오래된 집이 허물어지고 신축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집은 가마솥이 있는 부엌을 개조하는 일부 보수만 했다. 가마솥에 밥을 하는 것보다는 생활이 편해졌지만, 여전히 시골집을 벗어날 수 없었다.


출처 : 픽사베이


 동네 앞까지 들어선 아파트를 처음으로 가본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민지라는 친구가 집에서 놀자고 해서 따라갔다. 대우. 삼환 아파트였다. 눈앞에 펼쳐진 민지네 집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베란다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거실은 따스함으로 가득했다. 주방은 개조한 우리 집 부엌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세련된 느낌이었다. 민지의 방은 흰색과 분홍색의 가구와 소품들로 공주방 같았다.

 친구네 집에서 돌아온 날, 어머니에게 방을 갖고 싶다며 심술을 부렸다. 어머니는 언니와 함께 쓰라며 방 하나를 비워 침대 하나와 책상 두 개를 놓아주었다. 아무리 꾸며도 민지의 방을 흉내 낼 수는 없었다. 이때부터 아파트를 동경했다. 아파트에 살고 싶은 꿈은 비교적 빠르게 이루어졌다. 수능을 치르고 부모님의 가게가 있는 서울의 어느 동네로 이사한 것이었다.


 아파트 생활은 결혼 후에도 이어졌다. 둘째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 줄 알았다. 둘째를 낳고 돌이 지난 지 얼마 안 돼서부터 밑에 집 아주머니가 수시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층간소음이 문제였다. 가족이 모두 잠든 깊은 밤에도 아주머니는 층간소음을 호소하며 현관 벨을 눌렀다. 우리 집에서 발생한 소음은 아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타워형 아파트에는 다른 집 소음이 바로 밑에 집뿐 아니라 다른 집까지도 전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층간소음 매트를 깔면 괜찮을 줄 알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예상은 빗나갔다. 100만 원을 들여 매트를 깔았는데 아주머니는 층간소음으로 힘들어했다. 급기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경고가 담긴 종이가 붙었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여전히 층간소음을 호소하는 아주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에 케이크를 사다 드렸다. 그런데 뜻밖의 말이 돌아왔다. 아주머니가 이런 걸 사 올 게 아니라 조용히 지내면 될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교육열이 높은 동네 분위기에 아이를 공부시킬 게 걱정이었는데, 층간소음으로 참을성의 화살이 당겨졌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주택 단지


 14년간의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주택을 알아보았다. 처음엔 남편 회사 근처에 있는 타운하우스를 알아보았다. 형편에 맞는 집을 찾다 보니 시골로 오게 되었다. 용인에서 마지막 남은 시골이라고 하는 동네에 터를 잡았다. 집 근처에 있는 시골의 작은 학교도 이곳에 정착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이곳이라면 도시의 아이들보다 조금은 더 놀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주택으로 오고 나서 더는 층간소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음이 편했다. 아이가 맨발로 집을 성큼성큼 걸어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러나 생활하기에는 단독주택보다 공동주택이 더 편리하다. 시골은 편의점, 마트, 병원, 학원이 도시보다 멀리 있다. 버스의 배차시간이 길어서 대중교통만으로는 자유롭게 이동하기 어려워 자차가 필수이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는 주택에 살아서 얼마나 좋으냐며 부럽다고 말하곤 한다. 아파트와 주택 생활의 장. 단점은 극명하다. 어느 게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층간소음과 맞지 않는 교육 분위기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이곳으로 온 지 6년이 되었다. 해방되고 싶은 만큼 자유를 갈망했다. 층간소음과 과열된 교육열로부터 자유로워진 건 맞다. 그러나 주택은 다른 면에서 시간적 자유를 반납해야 한다. 주택은 하나하나 손길이 직접 닿아야 한다. 수시로 집안과 밖을 돌보지 않으면 관리가 안 된다.      


 지난날을 돌아보니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다. 문득, 생활의 자유로움은 사는 곳보다 서로의 마음에 달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공동생활을 감안해야 한다. 자잘한 소음에는 배려를, 아기를 키우는 가정에는 고운 시선을, 감정이 앞세우는 상대에게는 양보를 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감정을 대립하거나 피하기보단 인내심으로 감싸주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을 잘한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서로의 생활권 안에서 어우러진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지. 공동주택은 여러 가정이 어울려 사는 곳이다. 여럿이 함께일 땐 배려와 양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 가족이 사는 주택 단지


우리 가족이 사는 주택은 나 홀로 집이 아니다. 11자로 나란히 10개의 집이 있다. 주택 단지가 자리를 잡아가던 어느 해였다. 주차 문제로 시시비비가 붙은 일이 있었다. 집마다 주차장이 있지만 한두 대만 주차할 수 있다. 집주인이 차를 대면 자리가 없다. 손님이 오면 길에 주차해야 하는데, 자신의 집 앞 도로에 차를 대지 말라며 누군가 엄포를 놓았다.


 한 사람이 배려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자신의 것을 내어주지 않는다. 주택 단지의 도로는 공동의 소유물이지 개인소유가 아니다. 함께 사용하는 도로를 개인소유로 여기던 어느 가족은 몇 년 살지 못하고 이사했다. 그 뒤로는 주차 문제로 소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주차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서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도시 생활 혹은 공동주택 생활에 멀미가 나서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들이기에 서로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지금은 다른 집에 손님이 오면 옆집, 앞집 할 거 없이 집 앞 도로를 내어준다.


 내가 사는 주택 단지는 특이하게 적은 가구에 비해 2개의 다가구 주택이 있다. 인근 주택 단지에서 다가구 주택이 들어서는 걸 반대했다고 한다. 반대한 사람들은 하나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든다. 우리 단지에도 다가구 주택이 지어질 때 주위에서 왜 반대하지 않느냐고 물어오던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우리 단지의 사람들은 다가구 주택 건설에 모두 동의했다. 다가구 주택은 지어졌고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지난주에도 누군가 이사 왔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왜 주택 단지에 공동주택이 들어서는 걸 반대하는지. 다가구 주택이 들어와도 불편하지 않다. 집값이나 땅값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하나의 건물에 여러 가구가 사는 것만이 공동생활의 전부는 아니다. 단지를 이루며 사는 것 또한 공동생활이다. 서로를 받아들이는 삶 속에 또 다른 자유가 있다. 자유는 표면적으로 보면 환경에 영향을 받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엔 마음의 자유가 존재한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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