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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Jun 22. 2023

연애와 결혼 생활

 어제부터 오늘까지 밤을 새워 넷플릭스에 접속해 있었다. 이틀간 시청한 건 연애에 관한 프로그램이었다. 결혼 전에는 ‘짝’이라는 프로를 즐겨 볼 만큼 연애에 관해 나름대로 관심이 있었다. 연애에 관심이 사라지게 된 건, 결혼 후부터였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하는 사랑에 대해 마침표를 찍었으니 관심도가 떨어지게 되었다고 말하는 게 맞는 표현이다.


 한 사람에게 정착했으니까 더는 사랑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사랑에 고민할 이유도 없다고 여긴 듯하다. 10년이 훌쩍 넘어서 다시 연애를 다루는 프로를 보게 된 건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다. 남편 회사 동료가 ‘나는 솔로’라는 프로에 출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평소 회사 생활이나 직장 동료에 대해 말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을 썼다. 남편과 하루 중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동료가 어떠한 사람인지 궁금했다. 남편의 동료가 나오는 프로만 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솔로 지옥’이라는 프로까지 밤을 새워 시청했다. 재밌기도 했지만, 난생처음 만난 남녀 사이에서 흐르는 사랑의 기류가 새롭게 다가왔다. 설렘뿐 아니라 속상함, 서운함, 미안함, 고마움, 행복함 등 여러 감정이 교차되는 순간과 만나는 지점에 흡수되어 버렸다.


나는 솔로 15기 남자 소개


 이 두 개의 프로그램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크게는 연령대이다. ‘솔로 지옥’은 20대가, ‘나는 솔로’에는 30대가 출연한다. 더 나아가서는 연령대별로 연애할 상대를 찾는 기준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성별을 떠나 20대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30대는 감정보다 현실을 염두한다. 물론, 연령대에 상관없이 성향에 따라 감정이나 현실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감정은 상대에게서 이성적인 감정이 느껴지느냐이다. 현실은 연애하기에 무리가 되지 않는 거리와 연애를 넘어 결혼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여부이다. 그러니까 20대는 연애만을, 30대는 결혼을 고려한 한 연애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을 두고 웃고 울며 짝이 되는 결과에는 성별에 따른 차이가 확연했다. 여자는 20대이든 30대이든 자신에게 진심인 남자를 선택했다. 반면, 남자는 여자가 지고지순한 마음을 보여줘도 결국엔 자신이 끌리는 이성에게로 갔다. 처음엔 관심이 없었지만, 한결같이 헌신적인 남성에게는 없던 마음도 생기는 게 여자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식상하고도 뻔한 말은 대개의 여자에게 있어서만큼은 현실적이다.


 이미 이러한 사실을 20대 초반부터 한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상대보다 내 마음이 더 큰 남자와 연애를 하게 되면, 여자는 마음고생을 하게 된다. 그 사람 곁에 있어서 좋지만, 웃는 날보다 마음을 앓게 되는 날이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나면 스스로 깨닫게 된다.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보다 날 좋아해 주는 남자와 만나야 행복하다는 것을. 이 말을 다르게 하면, 여자는 사랑을 주는 것보다 사랑받으며 이성에 대한 애정이 점점 커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가족이 주는 사랑만큼 혹은 그 이상 마음을 완전한 타인에게 받게 되면 감동한다.




 아직도 남자에 대해 잘 모르지만, 서로의 짝을 찾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남자는 여자와 반대로 본능적인 감정이 더 앞선다는 걸. 남자는 이성으로 확 와닿는 여자와 연애할 때 자신감이 커지고 만족하는 듯하다.      


 나의 연애를 돌아보면 앞서 말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편과의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연애, 사랑, 그 무엇이 되었든 마음 편한 게 제일이라고 여긴다. 때문에, 나에게 잘하는 남자가 연애 상대에 있어서 첫 번째였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이성보다 날 좋아해 주는 남자와만 연애한 것이었다. 나 역시 다른 여성들처럼 남자에게 별다른 호감이 없었어도 나에게 (헌신적이게) 잘해줄수록 없던 마음이 생겨났다. 반대로 아무리 마음이 가도 날 바라보지 않는 남자라면 마음을 돌려세웠다.


 처음 만난 날 결혼을 결심할 만큼 한눈에 반했다고 한 남자를 평생의 동반자로 맞이해 결혼 생활을 12년째 하고 있다. 외적으로 보이는 모든 게 연예인 같다고 느꼈는데, 남편은 실제로 연예계 생활을 했었다. 아무리 외모가 뛰어나도 끼가 없어서 회사를 들어갔다는데, 부모님께서 선호하는 직업군이었다. 아버지는 남자가 고운 손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한 적이 있었다. 미신이나 편견이겠지만, 곱상한 손은 폭력적이지 않을 거라 믿으신 듯하다.


 연애 시절엔 생각지도 못한 배려를 받을 때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는데, 결혼 생활은 다르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남편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의 태도에는 이해와 수용, 관용과 포용이 담겨있다. 뿌리내린 가부장적인 분위기에 자라서 주위 또래보다 성장기에 억압적인 상황이 많은 편이었다. 할머니만은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품어 주셨다. 세 번째 만남에서 남편이 자라온 환경에 대해 듣게 되었다. 남편의 부모님께서는 나의 할머니처럼 넓고 깊은 바다를 닮은 분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러한 부모님 아래 자란 남편이라면 왜인지 한없이 너그러움으로 날 포용해 줄 것만 같았다. 알아 온 세월이 길다고 해서 한 사람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이만하면 이 사람과 평생을 약속해도 되겠다는 마음이었다. 12년을 살아보니 반전도 있었지만, 남편은 내 예상대로다. 바다를 닮은 사람.


솔로지옥 2기


 한 지붕 아래에서 오래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서로의 장점보다 단점을 더 많이 보게 된다. 나의 부족이 드러나고 여성성이 부재해도 인자한 얼굴로 웃어줄 때, 두 번의 출산으로 변한 외모와 체형을 잘 관리하지 못해도 여전히 예쁘다고 말할 때, 남편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싶다. 남편에 대한 내 사랑 표현도 연애 시절과 결혼 생활에서 차이가 있다. 연애할 땐 민망하게도 남편의 말에 자주 웃었던 건 외에 무언갈 한 건 없다. 결혼 후 노력하기 시작했다. 부부관계는 해가 더해갈수록 공을 들여야 좋아진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남편을 사랑하는 방식 중 가장 중요하게 꼽는 건 세 가지이다. 나의 감정에 대한 것, 편안한 생활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 남편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부부라는 말속에는 서로의 무감함이 들어 있다. 현실적인 부부가 되지 않도록 남편에게 집중하고, 존경심을 더 많이 표현하려고 한다. 사회에서 몸과 마음을 많이 썼을 남편이 집에서만큼은 평안할 수 있도록 가족의 울타리를 잘 지키려고 신경 쓴다. 부부관계를 원할 때 아무리 고단해도 거절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결혼 생활을 오래 한 여성들은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하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거나 다른 사람과 결혼할 거라고. 내 생각은 조금은 다르다. 결혼 전 연애했던 사람 중에는 공주 모시듯 떠받들어 주는 헌신적인 남자가 있었다. 그와 살면 지금과 다를까.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 누구와 살아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하다. 가정 폭력, 반복된 외도와 같은 상식 밖의 언행을 하는 사람이라거나, 반사회적인 인격장애를 앓는 사람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특별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허상인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은, 인간만이 가진 공통적인 본성에 관해서는 큰 차이가 없으니까.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남편과 아내는 없다. 서로의 부족과 결핍을 감싸주며 살아가는 것. 이게 결혼 생활에 있어서 본질적인 사랑이라고 믿는다.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가족 그 누구도 손상되지 않도록 울타리를 견고히 하며 서로를 지켜주는 데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 있다. 결혼 생활은 연애할 때처럼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요동하는 재미는 없지만,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깊은 안정감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결혼한 지 3년 미만인 커플 3쌍 중 1쌍은 이혼한다고 한다. 몇 년 살아보고 아니라면 빨리 결단을 내리고 서로의 삶을 다시 찾아가는 것이다. 결혼 정년 기가 계속해서 늦어지고, 비혼주의자도 늘어나고 있다. 청년들이 연애, 사랑, 결혼에 관심이 없는 듯해 보여도 어디에 선가는 사랑을 나누기 위한 뜨거운 열기가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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