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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Jun 27. 2023

우울하게 맑은 하늘

 코로나 19로 몸살을 앓다가 마스크 해제가 된 2023년의 장마가 시작되었다. 무섭게 기온과 습도가 올라가더니 일주일 내내 날이 흐리다. 지난주부터 비가 오락가락한다. 추적추적 내렸다가 금방 그치길 반복하고 있다. 비 소식이 뚜렷하면 아이가 등교할 때 우산을 챙겨주었을 텐데. 우산 없이 등교했다가 하교할 즈음에 비가 내리기도 여러 날이었다. 우리 집은 학교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어서 비가 많이 오지 않으면 좀 맞고 걸어와도 된다. 


 비 오는 날이 몹시나 힘겹다. 누구나 어릴 적에 얻은 지울 수 없는 기억이 있듯, 나 역시 그러하다. 비 오는 날이 힘겨운 이유는 불편해서가 아니다. 습도가 높아 옷과 머릿결이 눅눅해지고, 우산을 써도 신발 앞코가 젖어도 상관없다. 몸이 젖으면 씻으면 그만이고, 신발과 옷이 젖으면 갈아입고 빨래하면 된다. 먼지를 뒤집어쓴 차가 비에 젖어 지저분해지면 세차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마음이 힘든 건 어쩔 도리가 없다. 무방비 상태로 힘든 마음을 붙잡는 수밖에. 


 비 오는 날 극도로 예민해진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방법을 나름 찾긴 했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그 방법은 가능하면 비 오는 날이면 외출을 삼가는 것이다. 타인과의 연락도 삼간다. 살림과 육아에 더욱 집중한다. 평소에 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청소하고 정리한다. 식기를 팔팔 끓는 물에 푹푹 삶기도 한다. 주변을 정리하면 마음이 조금은 안정감을 찾는다.   장마철처럼 비가 연이어 오는 날이면 밤잠을 잘 자지 못한다. 그런 날에는 글을 많이 쓴다. 대부분 속마음 날것 그대로의 글이다. 글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것이어서 나중에 잘 두었다가 시나 소설로 발전시키곤 한다.


비 오는 날, 집 근처 카페


비 오는 날이 힘겨운 이유는 별로 대단치 않은 기억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견디기 버거웠던 일. 워킹맘이라는 단어조차 없었을 시절. 어머니의 부재는 늘 또래와 비교 대상이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공부를 못하거나 재능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다만, 어머니의 품만큼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어머니의 존재가 아주 컸던 듯하다. 


비 오는 날이면 신발주머니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빗속을 뛰어 집으로 가곤 했었다. 정신없이 뛰다 보면 신발주머니에서 실내화가 빠져나가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비 온 뒤 다음 날이면 한 짝 밖에 없는 실내를 신은 날도 있었다. 창피한 나머지 양말을 신은 채 하루를 보내기도 했었다. 친구가 왜 맨발이냐고 물을 때마다 실내화를 잃어버렸다고 아무렇지 않은 듯 감정을 숨겼다. 그럼, 친구는 엄마에게 말하라고 했다. 그래, 너는 엄마에게 말하면 되겠지. 그런데 나는 아니야. 말해도 당장 오늘 안에 실내화를 준비할 수 없었다. 


나의 어머니는 다른 지역에서 밤낮없이 일하시느라 바쁘셨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다른 또래보다 일찍 돈을 손에 쥐어 주셨다. 준비물이 필요하거나 실내화를 잃어버렸을 때 스스로 살 수 있도록. 부모님으로부터 심리적인 독립이 빨랐던 것도 어린 시절 독립해야만 하는 상황을 겪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원하진 않았지만. 


가수이자 그림책 작가 이적의 어머니는 비 오는 날 일부러 우산을 들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 이적은 비 오는 날이 좋았다고 한다. 친구들과 비에 흠뻑 젖어 놀 수 있어서였다고 덧붙였다. 이적처럼 씩씩하게 대처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틀 전날, 첫째가 하교할 시간이 되었을 즈음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제법 굵은 빗줄기였다. 3분 거리여도 우산을 쓰지 않으면 옷이 다 젖을 만큼의 비였다. 


비 내리기 직전의 밤, 우리 동네


 나는 부랴부랴 우산을 챙겨 학교로 뛰었다. 아이들이 비를 맞고 교문을 뛰어나오고 있었다. 첫째도 비를 맞고 종종걸음으로 나오던 참이었다. 금방 나를 알아보고는 우산을 받아서 들었다. 첫째의 표정이 뭐랄까…. 흐뭇함이 묻어있었다. 만족스러운 얼굴. 그 얼굴에서 ‘역시 내 엄마!’,라는 문장이 읽혔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나처럼 우산을 들고 온 부모들도 있었지만, 비를 맞고 뛰어가는 아이들을 눈에 밟혀서였다. 정작 그 아이들은 내 마음과 다르게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집이 멀거나 일하느라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부모들이 떠올랐다. 비를 맞고 와야 하는 걸 알지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인 어머니의 심정.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에 미안한 마음이었다. 


 한편으로는 5학년이면 비를 좀 맞고 와도 되는데 과잉보호하는 게 아닌지,라는 염려가 섞여 들어왔다. 첫째는 엄마가 우산을 들고 와주면 좋지만, 아니어도 괜찮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곤, 다음부터는 우산을 들고 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니 비를 맞아보는 경험도 필요하다. 비를 맞아야 하는 속상함도 있지만, 비를 맞은 만큼 마음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자라나고 있다는 걸 지금은 안다. 부모가 되고부터 걱정이 많아졌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다. 아이에게만큼은 늘 걱정을 달고 산다. 이러한 게 부모 마음일까. 아이가 장성해도 마음이 쉬이 놓아지지 않을 것만 같다.      


비를 맞아서 한껏 싱그러워진 조팝나무와 편백나무, 마당에서 가장 예쁜 곳


 오늘 둘째가 하교해 돌아와서 첫 번째로 한 말이 있다. “엄마, 다른 친구는 엄마가 학교 앞에서 기다리다가 데리고 가던데? 우리 엄마는 왜 안 왔어? 혼자 걸어왔잖아.”, 하는 것이었다. 온라인 서점과 계약을 하느라 필요 서류를 이메일로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당황스러움에 일을 멈추고 둘째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3학년이 되고부터 줄곧 혼자 걸어와서였다. 둘째는 혼자 걸어오는 게 싫다기보다, 친구가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걸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둘째는 또래에 비해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툴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학기 초보다 조금은 더 생각 주머니가 커진 듯해 기특하기도 했다. 둘째는 곧 내 얼굴에 자신의 볼을 가져다 부비며 “두 밤 동안은 학교에 안 가잖아. 월요일에는 내 엄마가 학교 앞에 왔으면 좋겠어.”하고 말했다. 아이가 아가였을 때였다. 힘이 들 때면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곤 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나도 내 삶을 서서히 찾아가야겠다고. 


 어쩌다 보니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지만, 당시에 바라던 삶은 별다른 게 아니었다. 다른 엄마들처럼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실 여유를 갖는 것, 운동을 하는 것, 뜨개 모임에 참여하는 것 등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 시절, 바라던 일상은 아니어도 일을 하며 내 삶을 조금씩 찾아가는 중이다. 두 아이가 학교에서 수업하고 있을 때야말로 본격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자주 아침과 점심도 거른 채 일을 하는 편이다. 시간에 쫓기면 몇 분이어도 시간을 내는 일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한참 비가 내린 박명


 둘째에게 ‘엄마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엄마의 삶이 있으니 스스로 걸어서 집에 오는 걸 양보해 주면 안 될까?’, 하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순간, 이 아이가 언제까지 나의 품 안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마음과는 다르게 둘째에게 “그래. 그럴게.”하고 답했다. 아이는 어느 순간이 되면 부모의 품을 벗어나게 되는 시기가 온다. 사춘기를 겪으며 심적 거리가 생기는 것 같다. 요즘은 사춘기도 빨리 온다는데. 엄마의 품을 원하는 것도 한 시절이다. 엄마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지금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엄마의 곁을 원할 때. 


 주말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다. 하늘은 어제와 오늘 새벽녘에 무섭게 비를 퍼부었다. 잠시 맑게 개었지만,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우울하게 맑은 하늘이다. 내 마음에도 무언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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