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아 Jul 10. 2023

나를 채우는 시간

 세 권의 단행본을 출간 후 글쓰기 루틴은 달라졌다. 책을 쓰기 전에는 육아와 살림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정확히는 살림의 반 이상을 내려놓고 잠도 줄여가며) 글을 썼다. 그래서 3년 주 5일을 하루에 6시간 이상씩 글을 쓸 수 있었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적인 소양을 갖추고 있거나, 직업이 있거나, 사람들을 활발히 만나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쓴다고 다 책이 되진 않았다. 


 첫 책 출간 이전에 두 권의 실패작이 있다. 3년간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글을 썼다고 여기는데 소진됨은 어쩌다 가끔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소진의 느낌은 수명이 단축되는 기분이다. 그런데 책을 쓰면서는 내가 소진되고 있음이 자주 절절히 느껴졌다. 몸과 마음이 그리고 정신상 태마저도 갈려나가는 듯했다. 특히, 몸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두 번째 책을 쓸 때는 탈고까지 11일간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시간씩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컴퓨터 방바닥에 눕거나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밥하고 아이들 학교와 학원 보내는 일 이외 쉬지 않고 탈고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출판사의 일정을 맞추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완벽한 탈고를 하려던 욕심이 과한 탓이었다. 책이 나오고 나서 그제야 출간 일정을 조정했어도 되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잘한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게라도 야단을 떤 덕분에 출판사 실장님의 성함을 판권지에 담을 수 있었으니까. 일정이 일주일만 미뤄졌더라면 실장님의 성함을 판권지에 올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실장님과 책을 두 권 작업하면서 실제로 만난 건 한 번 뿐이었다. 나는 몇 해 전부터 사람을 거의 만나고 지내지 않아서 1년에 한 번이면 그런대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설명하려면 너무나도 길기 때문에 다 말할 수는 없지만, 1년에 친구나 지인을 두세 번 만나다가 작년부터는 한번 만났다. 


 올해의 상반기도 다 지나가고 하반기에 접어들었는데, 여직 한 번도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다. 아! 동네에서 유일한 친구인 노부부는 제외다. 가능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자주 만나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기에. 할아버지는 이제 거동이 어려워 올해부터 텃밭에 한 번도 걸음 하지 못하셨다. 바람 쐬러 나와 보시라 해도 마당에만 나갔다 와도 숨이 차다고 하신다. 


오늘의 글쓰기와 독서


 어쩌다 글이 새어서 여기까지 와버렸지? 다시 글쓰기로 돌아가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며 1년에 세 권의 책을 출간하고 나니 내 안에 있는 모든 게 텅 비어 버린 기분이다. 참고자료 없이 모두 창작으로만 집필해서 더 그런 것 같다. 다시 나를 채워야 할 시간이 왔음을 알았다. 일단, 글 쓰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 축난 몸부터 추스르기 위해 잠을 충분히 자고 있다. 돌보지 못한 아이들의 정서를 보듬어 주고 독서 시간을 늘려나가고 있다. 


 세 번째 책은 1인 출판사를 차려서 기성 출판사에서는 투자하지 않을 원고를 출간했다. 내가 인지도가 있는 작가였다면 어느 출판사든 책을 내준다고만 하면 원고를 보낼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인지도 없는 작가의 그것도 실용적이지 않은 원고를 출간하는 건 출판사에게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을 게 뻔하다. 두 번째 책도 함께 강의를 들었던 편집자들의 반응은, 인지도가 없어서 책으로만 승부를 봐야 하는데 어렵겠다는 평을 받았던 터였다. 그래도 이 세상에 없는 원고라는 생각에 자신감이 있었지만, 세 번째 책은 그러한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나에게는 아픈 손가락. 


 출판사를 차리는 일이 처음엔 사업자 등록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할 일이 무척이나 많았다. 컴퓨터 방과 테라스가 창고가 되었다. 주위가 어수선하다 보니 글쓰기도 책 읽기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출판사를 차리고 나서부터 글쓰기 루틴뿐 아니라 글 쓰는 장소도 바뀌었다. 월요일에는 시립도서관이 휴관인 관계로 집 근처 카페에 간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출간 전, 나의 독서는 지독한 난독증으로 힘겹게 하다가, 음악을 들으며 활자를 읽어나가는 힐링의 개념으로 점점 변화해 나갔다. 지금은 비어버린 글쓰기 우물을 채우려고 공부모드로 읽고 있다. 한 꼭지를 읽을 때마다 바로바로 요약. 정리를 하고 사유를 적고 있다. 


 누군가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기도 하고 책장을 넘기는 나를 보는 시각은, 짐작하건대 ‘여유롭고 팔자 좋네.’ 이지 않을까. 반면 시립도서관에서의 내 모습은 ‘열심히 하네’, 혹은 ‘무슨 시험이라도 준비하고 있나?’ 일 듯하다. 나의 마음가짐도 다르지 않다. 이렇게나 큰 카페에 혼자 독차지하고 앉아서 쓰고 읽는 속도를 보면 여유가 있다. 하지만 시립도서관에서는 무언가에 쫓기듯 조급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읽고 쓰게 된다. 환경이 주는 영향을 받아서 일 것이다. 시립도서관은 출근시간인 오전부터도 책장 넘어가는 소리,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 힘에 올라타 나도 속도를 낸다. 


 물질이 아니어도 내게 있는 체력, 정신력, 마음, 지식과 정보 등 능력을 쓰고 나면 빈털터리가 된 기분이다. 무엇이든 소진했다면 다시 채워야 한다. 더구나 자신에 대해서는. 나를 채워나가는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아무것도 없는 허상 같기도 하지만, 끝내 스스로를 지켜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카페, 도시 근교라 주말엔 사람들로 붐비는데 평일엔 거의 손님이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첫, 북페어 스토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