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덫

단편소설

by 이수아

5.

태섭은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지도 않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 침대 밑에서 검은색 타원형 가방을 끄집어냈다. 이사 올 때 짐을 넣어왔던 가방이었다. 가방을 뒤적이던 태섭이 꺼내든 건 1종 특수운전면허증과 화물운송자격증이었다.


지숙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고 싶었다. 아르바이트는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40대 경력단절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찾던 중 지숙의 성향을 잘 아는 친구 미정은 보육교사나 미용사를 이야기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미용사가 잘 맞을 듯싶었다.


다행히 지숙이 머무는 미정의 집 근처에 미용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학원이 있었다. 아르바이트 끝나고 야간 수업을 받으면 될 터였다. 국비 지원도 받을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 지숙은 아르바이트와 미용 수업을 병행하기 시작했고, 태섭은 틈틈이 대형차 동호인카페를 들여다보았다. 며칠 후 대형차 동호인카페에 새 글이 올라왔다.


- 트레일러 기사 급구

· 경력자 우대, 초보자 가능

· 1종 특수운전면허 및 화물운송자격증 소지자

· 출근 새벽 5시, 퇴근 오후 4시

· 월 급여 280만 원+@

· 주말 휴무

· 회사 차 대여 (차자 없이도 가능)

· 문의 010-xxxx-xxxx


좋은 조건이었다. 태섭은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개인파산을 했고 8살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취업에는 약점으로 작용하겠지만, 아이로 인해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사정을 말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사장은 태섭의 솔직함과 정직함을 좋게 봐주었다.


개인파산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태섭의 처지를 헤아려주었다. 4대 보험은 가입할 수 없지만, 운전자보험은 신용불량과 아무 상관 없어서 가능했다. 한때 큰 차에 관심이 있었던 태섭은 면허만 따 놓았지, 대형차를 몰아본 경험은 없었다. 소형주택만 한 트레일러가 부담스러웠지만, 사장의 조언대로 단거리 운전을 하면서 실력을 쌓았다.

새벽 5시까지 출근이었던 태섭은, 현우가 잠든 사이 집에서 나갔다. 새벽에 출근할 거라고 미리 말해 둔 터라, 현우는 자다 깼어도 울지 않았다. 현우는 남자가 맞춰 둔 시계 알람을 듣고 일어나 등교 준비를 스스로 했다. 식탁에 차려진 밥을 먹고 대충 이를 닦았다. 다행히 학교는 길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었다. 태섭은 현우의 하교 시간과 엇비슷하게 퇴근했다. 현우가 학교에서 적응하고 새 친구를 사귈 즈음 태섭도 트레일러에 익숙해져 갔다.


어느 날 사장은 태섭을 호출했다. 태섭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였다.


“이쪽으로 앉게나. 그새 실력이 제법 늘어서 장거리도 문제없겠어. 그래서 말인데 장거리 운전해볼 생각 있나? 힘들긴 해도 돈이 되거든. 장거리 한번 뛰고 나면, 다음날은 휴무라네. 물론 주말도 쉴 수 있고 말이야.”


처음 일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장거리 운전은 현실과 먼일이었다. 현우를 생각하면 단거리 운전이 맞지만,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태섭은 신용불량자가 된 이후 재난 지원금마저 못 받게 되어버렸고, 개인파산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빚을 갚아야 해서 한 푼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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