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6.
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뿌리칠 수도 없었던 태섭은, 대답 없이 눈만 껌벅였다. 곤란해하는 그의 표정을 읽은 사장은 해보고 안될 것 같으면 다시 단거리만 뛰어도 되니까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다음 주 화요일에 다녀 와 보라며 일정을 일러주었다. 첫날은 물건을 이천 물류센터에서 부산 물류센터로 옮기는 것이었다.
차에서 눈 좀 붙이다가 배차시간 되면 부산에서 이천으로 한 번 더 물건을 배송하고, 마지막으로 용인에서 물건을 싣고 바로 퇴근이었다. 다음날 오후 1시쯤에는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섭은 일당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사장은 손가락 다섯 개를 펴들고 다른 한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오, 오십이요?”
“특별히 조금 더 넣었네.”
태섭은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장거리 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 번째로 할 일은 현우와 연결고리가 되어줄 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태섭은 퇴근길에 키즈폰을 샀다. 그리고 현우에게 주었다. 몹시 신이 난 현우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라고 했다.
“전화 걸어볼게. 받아봐.”
따르르. 핸드폰에 태섭의 얼굴이 뜨자 현우는 엄지로 초록색 수화기 그림을 지그시 밀었다.
“여보세요? 아빠 들려?”
“전화 오면 지금처럼 받으면 돼.”
태섭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현우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거리 운전은 보통 1박 2일로 가기 때문에 하루는 현우가 혼자 자야 하는데, 할 수 있는지 물었다. 태섭과 둘이 살게 되면서 부쩍 성숙해진 현우는 혼자 자본 적은 없지만 할 수 있다고 했다. ‘하루만’이라고 한 남자의 말이 현우의 등을 떠밀어주었다.
혼자 하루를 보낼 현우를 위해, 태섭은 먹을 걸 단단히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비싸서 잘 사지 않았던 김치를 사고 된장찌개, 멸치볶음, 어묵조림, 계란말이, 오징어채볶음 등 밑반찬을 만들었다. 아침밥을 차리던 태섭이 말했다.
“현우야, 밥통에서 밥 꺼내고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 볼래?”
현우는 밥통 버튼을 눌러 뚜껑을 열고 밥을 퍼 담았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냈다. 태섭은 싱긋 웃으며 현우의 엉덩이를 두들겼다. 아침을 먹고 태섭은 회사로, 현우는 학교로 갔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온 현우는 가방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손을 씻고 나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태섭이었다.
“현우야, 집에 왔어?”
“응. 아빠 어디야?”
“일하고 있지. 오늘은 아빠가 장거리 운전하느라 집에 못 들어간다고 했던 거 기억하지? 전기레인지는 위험하니까 손대면 안 돼. 밥 잘 챙겨 먹고. 일 끝나면 놀이공원에 가자.”
놀이공원에 갈 생각에 들뜬 현우는 씩씩하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현우는 통화를 마치고 티브이를 켰다. 뉴스에서는 24년 만에 최고로 더운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주에도 최고기온이라고 했지만, 지하 2층에서는 더위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폭염이 지하 2층까지 파고든 건 이틀 전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