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8.
태섭은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이나 걸었지만, 통화는 되지 않았다. 안 받네. 벌써 학교에 갔나? 태섭은 현우에게 집으로 가고 있다고 문자를 보냈다. 피로가 몰려왔지만, 운전을 재촉했다. 자신도 모르게 눈꺼풀이 깜박 내려앉을 때마다 졸음쉼터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기다리고 있을 현우를 생각하니 쉬어갈 수 없었다. 태섭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 얼굴을 탁탁 두드리며 집으로 향했다.
태섭이 집 앞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였다. 아무리 덥다고 해도 지하는 지상보다 체감 온도가 낮은 편이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지하 1층을 거쳐 2층으로 내려갈수록 숨통이 막혀왔다. 더 이상한 일은 현관 손잡이가 미지근한 것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느낀 태섭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문을 열었다. 훅 열기가 밀려 나왔다. 침대에 누워있는 현우를 보고 남자의 동공이 부풀어 올랐다.
“벌써 학교 갔다 온 거야?”
“……”
태섭이 현우를 흔들었다. 현우는 반응하지 않았다. 태섭은 현우의 얼굴과 이마 그리고 손을 차례로 매만졌다. 자신의 귀를 현우의 코에 가져다 댔을 때였다. 머리 위로 뜨거운 바람이 느껴졌다. 바람이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어컨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태섭은 이마와 콧등을 움찔거리며 이불을 펄럭였다. 이불 속에서 리모컨을 찾아냈다. 리모컨은 난방 모드로 되어있었다. 태섭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난방을 냉방으로 바꾸고 풀썩 주저앉아 버린 태섭은 한동안 넋을 잃고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낯설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 이유가 평소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태섭은, 평소대로 해야 한다고 중얼거리며 주방으로 갔다.
냄비에 물을 받고 전기레인지를 켰다. 물이 끓어올랐다. 스프를 넣자 곧 물이 갈색으로 변했다. 거품이 올라왔을 때 라면을 넣고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태섭은 라면을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건더기를 다 먹어 갈 때쯤 현우를 재촉했다.
“안 오면 아빠가 라면 다 먹어버릴지도 몰라. 빨리 와 빨리.”
현우가 남긴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 소주와 함께 끼니를 자주 때웠던 태섭은, 습관대로 국물에 밥을 말고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왔다. 태섭은 밥과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라면이 부족하다며 몸을 일으켰다. 몇 발자국 걷다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려고 했지만 일어설 수 없었다. 태섭은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엉덩이로 바닥을 쓸며 침대로 갔다. 무력한 얼굴을 현우의 가슴에 파묻었다. 가늘게 늘어진 태섭의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태섭은 눈을 감았다. 봄, 여름, 겨울을 지나며 몸집을 키운 잡초가 추위에 맥없이 늘어 져버린 것처럼 그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 그가 눈을 떴을 땐 여름인지 초겨울인지 모를 만큼 온도가 낮아져 있었다. 태섭은 옷걸이에서 겨울 점퍼를 꺼내 입었다. 수면 양말까지 꺼내 신고 현우의 곰 인형을 집어 들었다.
“아빠가 빨리 가서 동현이가 좋아하는 라면 사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