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덫

단편소설

by 이수아

9.

지숙은 현우의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현우가 사는 동네로 접어들자 태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지? 거의 다 와 가는데. 갈색 벽돌 건물 앞에 도착한 지숙은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태섭과 현우가 사는 204호가 보였다. 현관문이 비스듬히 열려있었다. 현관이 열려있네…. 지숙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현관문을 바짝 열어젖혔다.


“방이 왜 이렇게 냉해. 현우야. 엄마 왔어.”


정적이 흘렀다. 지숙은 미동도 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현우를 발견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누군가 말을 하는 것처럼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등 뒤를 훑고 가는 듯한 서늘함에 여자의 가슴선을 따라 땀이 배어 나왔다. 침대에 누워있는 건 현우가 아닐 거라고 집을 잘 못 찾아간 것 같다고 합리화하며 지숙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섬뜩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무언가에 쫓기듯 뛰던 지숙은 크락션 소리에 멈추었다. 크락션을 울려대는 차 앞에 겨울 점퍼를 입고 수면 양말을 신은 사람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설마 아니야. 태섭씨는 아닐 거야. 지숙은 고개를 세게 가로저었다. 지숙과 태섭의 거리가 좁혀졌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지숙은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 지숙의 팔에 부딪힌 태섭은 휘청이다 뚜껑이 유실된 맨홀 사이로 발이 미끄러졌다. 그 바람에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봉지를 놓쳐버렸다.


맨홀의 깊이는 깊지 않았다. 태섭의 하반신만 맨홀에 빠졌을 뿐이다. 태섭은 봉지 밖으로 빠져나온 라면을 바라보았다. 그때 묵직한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덤프트럭이 태섭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지숙은 “안돼.”하고 소리 지르며 양손으로 귀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태섭은 눈을 똑바로 뜨고 덤프트럭을 바라보았다. 순간 덤프트럭에 깔리는 상상을 하며.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을 겪은 태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끽. 덤프트럭이 급정거했다. 덤프트럭 기사는 창문을 내리고 소리쳤다.


“미친 새끼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태섭은 맨홀에 빠진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맨홀 안은 캄캄했다. 때마침 생활 오수가 흘러나왔다. 오수는 태섭의 무릎까지 차올랐다. 회갈색 오수에 햇빛이 닿았다. 태섭은 곰 인형을 꼭 품에 안고 맨홀 안으로 공벌레처럼 몸을 말아 넣었다. 얼굴이 오수에 가까워질수록 습기를 가득 머금은 쿰쿰한 냄새는 태섭에게 스며들었다.


오수의 냄새는 태섭과 현우가 살던 지하 2층의 냄새와 닮아 있었다. 태섭은 코끝부터 천천히 얼굴을 오수로 들이밀었다. 익숙한 냄새를 따라 뒤통수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깊이 더 깊이. 갈색 벽돌 건물 지하에서 보았던 우주가 그곳에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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