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출간된 글

투명인간

단편소설

by 이수아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어보니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지, 하얀 면사포를 늘어뜨리며 걸어가는 신부의 뒷모습처럼 눈발이 흩날리고 있다. 집이 추운 것은 아닌데 흩날리는 눈발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기가 느껴져 따뜻한 모과차를 탔다.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을 머금으니 속에 온기가 퍼지는 듯하다.


몸이 따스해지던 그 순간 모과차가 든 컵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변신이라도 하듯 손끝부터 투명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팔, 목, 얼굴, 가슴, 다리, 발마저도 순식간에 투명하게 변해버렸다. 투명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렁한 눈망울로 몸의 변화를 바라만 볼뿐이었다. 가족들은 말도 없이 사라진 나를 걱정했다. 투명 인간이 된 지 이틀이 지나자 아버지는 경찰서로 달려가 실종신고를 했다. 나는 여기에 그대로 있는데.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했다.


“저 여기에 있어요.”


내 목소리마저도 투명해졌는지 아무도 내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걷는 걸음마다 온몸에 가득 차오른 물이 흘러내려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나는 소파에 앉을 수도, 침대에 누울 수도 없었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감정마저도 물로 변해버렸는지도 몰랐다.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기분은 느낄 수 없었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슬픔뿐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어 답답했다. 그저 서글프다. 슬픔이 느껴지면 몸에서 흘러내리는 몇 배의 물을 ‘왈칵’하고 쏟아 버리기 때문에 슬픔이 밀려오는 걸 눌러 담아야만 했다.


“아니, 물을 쏟았으면 닦아야지. 물바다네.”



내 몸에서 쏟아진 물을 밟고 미끄러진 어머니는 불만으로 볼을 멨다. 더는 민폐를 끼칠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 양지바른 곳으로 가면 내 몸에서 물이 흘러내려도 금방 마를 거야. 겨울이지만 초저녁에도 해가 오래 떠 있는 곳이 어딜지 찾았다. 투명 인간이 되기 전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했던 강아지 놀이터가 떠올랐다. 강아지 놀이터, 그래 거기가 좋겠어. 강아지 놀이터로 향했다. 투명 인간이 되어버린 날 사람들이 알아볼 리 없었다. 사람들은 무참히 내 몸을 치고 갔다.


“아씨, 뭐야? 비 오는 거야? 우산 없는데. 전에 빨리 가야겠다.”

“야, 너 나한테 지금 침 뱉었냐? 침 졸라 튀기네.”

“앗, 차가워. 뭐야 이거!”

“이 보세요. 아줌마! 청소하는 중이어도 그렇지. 물을 이렇게 퍼부으시면 어떻게 해요? 눈 없어요?”

“이 아가씨 좀 봐. 내가 언제 물을 퍼부었다고 그래요? 생사람을 잡아도 유분수지. 청소한다고 무시하는 거예요?”


나는 의도치 않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나를 스치고 지나간 사람과 내 몸을 통과하고 지나간 사람은 서로 싸워댔다. 투명 인간이 된 걸 깜박 잊은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게 아니에요. 싸우지들 마세요, 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


하지만 깊은 산중에서 혼자 외치는 아우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투명 인간이지……. 투명 인간이라고 해도 그렇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느껴져 슬펐다. 슬픔을 느끼자 밀물처럼 물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넘실거리는 것 같은 찰나에 한바탕 바닥에 물을 쏟아내었다.




슬프면 안 돼. 빨리 눈물을 삼켜야 해. 아무도 날 보지 못하고, 예전으로 되돌아갈 방법을 알지 못한 나는 이대로 없어져도 괜찮을 거 같았다. 아니, 사람들에게 피해만 줄 거라면 이대로 없어져 버리는 게 나은 건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독극물을 먹던가 칼로 내 심장을 찌르던가 고층에서 뛰어내리면 죽어버릴 텐데 물이 되어버린 나는 어떻게 사라질 수 있을까? 넋을 놓고 한참을 생각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바다나 강으로 가서 내 몸을 던지면 되잖아. 흐르는 물에 몸을 섞어 그렇게 흘러가는 거야. 이렇게 살 바엔 쥐도 새도 모르게 그렇게 없어지는 편이 나아. 그러나 이 몸을 이끌고 바다까지 가기에는 무리였다.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켜 언쟁을 만들까 봐 겁이 났다. 근처 저수지나 호수가 좋을 듯했다. 핸드폰을 만질 수 있다면 검색해서 금방 근처의 저수지나 호수를 찾을 수 있을 텐데, 아무것도 만질 수 없어 막무가내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큰 대로변을 끼고 돌아가면 호수가 있을 것도 같았다.


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보이면 나무 밑으로 몸을 숨겼다. 피해를 줄게 안 봐도 뻔했다. 나무 밑으로 들어간 나는 그곳에서 또 다른 신기한 경험을 했다. 흙에 심어진 나무가 내가 흘린 물을 흡수한 것 같았다. 겨울의 흙은 메마른 듯 약간은 얼은 듯해 물을 왈칵 쏟아내도 흙이 질펀해지지 않았다. 흙과 나무만 있다면 아무리 물을 흘려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그 찰나 나는 영혼의 단짝이라도 만난 듯 희망을 느꼈다.




이럴 땐 기뻐해야 하는 게 맞는데 기쁜 감정을 느낄 수 없어 또다시 슬퍼졌다. 흙과 나무를 만나서 기쁘지만 슬픔만을 느낄 수 없는 나는 기쁜 만큼 슬픔을 토해내었다. 사람들이 날 무참히 치고 지나갈 때 느꼈던 슬픔과 내 몸이 투명하게 변해버린 슬픔까지 모두 나무에게 쏟아내었다.


‘왈칵’

‘왈칵’

‘왈칵’


물이 빠져나가 빈자리가 생겼는지 한결 몸이 가벼웠다.


“이제 좀 괜찮아졌니?”

“누구야? 너 누구냐고.”

“위를 올려다봐.”


나무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놀라지 마. 우리는 자연과 하나잖아. 나는 네가 보여. 목소리도 들려. 너도 그렇지?”


날 볼 수 있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나무에게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다시 슬퍼졌다.


‘왈칵’

“미안해.”

“왜 미안해. 미안할 일이 아니야. 나는 물이 필요한걸. 길가에 사는 나무는, 비나 눈이 오지 않으면 누가 물을 주지 않잖아. 그래서 항상 물이 고파. 나에게 물은 사랑이야. 오히려 고마운걸.”



투명 인간이 아니었을 때 나는 몹시 사랑이 고팠다. 어릴 때는 친구와 부모님에게 사랑을 갈구하다 성인이 되면서 사랑받기 위해 내 마음을 조금씩 떼어주었다. 사랑을 구걸하는지도 모른 채. 자주 호구가 돼서 이용당해도 날 필요로 하는 거라고 합리화를 시키며 그것을 ‘관심’이라 믿었다.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투명 인간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다 떼어주어도 사랑을 받지 못해 눈물이 들어차서 투명하게 변해버렸는지도 몰랐다.


투명 인간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사랑에 목이 말랐다. 자신에게 물이 사랑이라고 말한 나무를 사랑하고 싶어진 나는 마지막 남은 온 힘을 다해 나무를 끌어안았다. 스르륵. 발부터 서서히 흙으로 몸이 미끄러져 내렸다. 그 느낌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생각나는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내가 태어나던 날부터 탄생을 축복해 주지 않은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무관심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부모님이 떠올랐다. 마음으로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날도 있었지만, 무관심 속에 살아온 나는 살가운 딸이 아니었다. 어버이날도 부모님의 생일에도 목까지 사랑한다는 말이 차올라도 말하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눌러 담아 간절히 마음으로 빌었다. 부모님께 사랑받고 싶었던 만큼 사랑한다고 외치고 또 외쳤다.

‘사랑해요. 어머니 아버지 사랑해요.’



이상한 일이었다. 행복이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슬픔밖에 느껴지지 않았는데 신기한 일은 계속 일어났다. 흙에 완전히 흡수된 나는 나무와 하나가 되었다. 나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퇴근 시간인지 회사원으로 보이는 한 무리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나는 지나가는 회사원을 흉내 냈다. 나무는 깔깔거리다가 ‘사락사락’ 나를 간지럽혔다. 그리고 말했다.


“너는 나의 생명수야. 고마워. 사랑해.”


한겨울이었지만 몸도 마음도 춥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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