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출간된 글

진심이 빚어낸 즐거움은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한다

즐거움

by 이수아

사람을 만나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난 뒤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에너지를 쓴 만큼 채우고 싶은 마음이 여기에 있다. 내일을 잘 살려면 재충전을 해야 하니까. 마음이 맞지 않은 사람과는 체력뿐 아니라 정신적인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 이럴 땐 즐겁지 않다.


특히, 많은 사람과 만나야 하는 자리에서 여러 사람의 마음을 맞춘다는 건 어렵다. 마음을 맞추지 않아도 되지만, 왜인지 ‘진심’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닌다. 내가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가 빈 껍데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은 상대적이어서 상대방도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이러한 만남은 긍정적인 감정을 방해한다.




누군가와의 만남 뒤에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남았으면 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날 때에는 최선을 다해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마음을 더하게 된다. 아무 생각이나 노력 없이 만날 수도 있지만, 시간을 내어 만나러 와준 사람에게 일정의 노력을 들이는 건 예의라고 여긴다.


상대방에게 집중하려면 다수보다 소수일 때가 더 수월하다. 언제인가부터 다수의 사람을 만나기보다 소수와의 만남을 선호하게 되었다. 한자리에 모이는 사람의 수가 다섯을 넘어가면 만날지 말지 고민된다.



몇 달 전, 다섯 명이 넘는 사람과 만나고 나서 관계가 틀어지는 일이 있었다. 누군가 나의 언행이 불편하다고 했다. 정확히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로 인해 불편함을 느꼈다고 하니 사과했다.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제삼자가 불편함을 느낀 상황. 그 후 괜히 눈치가 보였다. 마음을 졸이다 보니 불필요한 곳까지 조심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긴장감과 부담감은 좋은 관계로 나아갈 수 없게 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그 사람을 좋아하지만, 결국 조용히 멀어졌다.




이틀 전, 나를 포함해 열한 명의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 초대되었다. 한 분을 제외한 다른 분과는 초면이었다. SNS상으로도 유대가 쌓인 사이가 아니어서 밤새 고민했다. 시간이 된다고 해서 선뜻 나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고민 끝에 자리에 참석하기로 했다. 초대해 준 분에게 감사한 마음도 있었지만,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먼저 하신 분들의 모임이어서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전에 겪었던 좋지 않은 경험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걸 어렵게 했다. 한 번의 모임 이후 멀어진 얼굴이 떠올라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나의 모델링이 되어줄 분을 만나는 자리만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익 관계를 따져야지만 나갈 수 있었다. 지난번처럼 관계를 그르치면 어쩌나 걱정되었지만, 다시 한번 더 나와 상대방을 믿어보기로 했다.


새로운 사람과 인연을 맺을 때면 설렘이 먼저였는데, 이제는 걱정이 앞선다.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노파심에 걱정스러웠다. 자꾸만 찾아오는 걱정을 떨쳐내려 지하철로 이동하는 동안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조금은 차분해진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우리는 커피 – 밥 - 커피를 마시며 하루의 반나절을 함께했다. 세 시간이 지나면 에너지가 조금씩 떨어지면서 피로감이 드는데 어제는 달랐다. 시간이 갈수록 어디에선가 힘이 솟아올랐다. 에너지가 채워지는 기분이었던 것이었다.




누군가의 실수를 덮어줄 수 있는 너그러움,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비언어적인 몸짓, 누군가의 수줍은 고백에 부끄러움을 견디며 마음을 내어준 공감이 그곳에 있었다. 그 마음이 느껴질 때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몇 달 동안 웃어야 할 양을 어제 다 웃은 듯했다. 올해 들어 가장 많이 웃은 날이었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우리는 앞으로의 미래도 그려보았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더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누군가 말했고, 순간 ‘그 일을 해야겠다.’하고 생각했다.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경험을 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람들과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변심이었다. 즐거움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나를 이 모임에 초대해 주신 분께서, 다음에 만날 땐 오늘보다 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무언갈 준비해 보겠다고 하셨다. 나도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게 있을지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다음의 만남을 기약했다. 인사치레는 아니었다. 모두가 진심으로 원하고 있었다. 다음에 만날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했다.


초면인 사람들과 하루 반나절을 보내면서 이렇게나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초면인 사람과 즐겁게 시간을 보낸 건 처음이었다. 행복함과 기쁨의 감정은 찰나의 순간에 찾아와 곧 사라지지만, 즐거움은 오래 유지된다. 우리가 함께한 즐거웠던 시간은 추억으로 남고, 언제든 추억을 회상하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카카오톡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오늘 만난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좋았다는 글을 올려주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한 마음이었다니 뭉클했다. 어느 분의 메시지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아직도 꿈같은 기분...

후기를 뭐라 쓸지...

어떤 단어를 쓸지...

계속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서로 에너지를 채워줄 수 있는 인연을 만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함께 한 시간이 즐겁고 에너지를 채워줄 수 있었던 건 서로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어서가 아닐까.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나처럼 서로에게 마음을 더하고 있었다고 여긴다.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 새로운 일은 벌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귀한 인연이 왔으니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한다.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인연, 그 소중함을 받드는 마음은 기꺼이 무언갈 시작하게 만든다. ‘진심’이란 감정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서 확인할 수 없다. 그저 직감과 육감으로 감각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서로의 진심이 더해져 만들어낸 즐거움은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해 주었다. 다음번 만남에도 거짓 없이, 온 마음을 다하고 싶다. 에너지를 들여도 본전 생각은 나지 않을 듯하다. 누군가의 마음이 비어있는 나의 에너지 창고를 다시 채워줄 테니까. 누군가 채워준 에너지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재충전한 것보다 더 크다. “에너지를 채워줄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나가는 건 진심으로 마음을 더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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