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아
자주 울던 나의 모습은 세월이 흘러도 쉬이 잊히지 않는다. 초등 고학년이었다. 한번 울음이 터지면 오래 울었다. 팔짝팔짝 뛰며 슬픔을 온몸으로 쏟아내었다. 어떤 일로 슬퍼졌는데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으면 슬픔은 불어나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나의 슬픔과 눈물을 알지 못했다. 울음소리에 견디지 못한 할머니가 밖으로 나가면 목청이 높아졌다. 한참 뒤에 다시 돌아와서도 울음이 계속되면 따가운 말을 듣곤 했다. 그럴 때면 다친 마음에 생채기가 더해진 듯했다.
청소년이 되어서는 집 끄트머리 방에서 숨죽여 훌쩍였다. 연로하신 할머니는 자신의 몸보다 두 배는 훌쩍 커버린 손녀가 답답하셨는지도 모른다. 미닫이문을 열고 우는 이유를 물으셨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지 않느냐며. 대답 없이 울고만 있으면 할머니는 깊은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할머니의 굽은 등에 더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학창 시절엔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친구가 몇 없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몇 없는 친구에게마저도 감정을 잘 숨겼다. 단 한 번도 친한 친구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되면서 눈물을 보인다는 게 부끄러웠다.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다 새벽녘 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다음날 부어오른 눈을 얼음으로 찜질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어 보였다. 어른이라면 그래야 한다는 듯이.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몹시 애쓰며 살았던 시절이었다.
누군가 눈물을 보이면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는 걸 유치원 교사가 되어서 알았다. 유치원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때 아이의 감정에 어떻게 반응해 줘야 하는지 배웠지만, 위로는 이론으로 배워지는 게 아니었다.
교육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연스럽게 알아갔다. 미취학 아이의 슬픔과 속상한 마음을 헤아려 주는 효과적인 방법은 특별하지 않았다. 우리 00가 마음이 아프구나, 속상하구나, 슬프구나, 하는 말을 건네고 등을 다독이거나 꼭 안아 주면 된다. 그럼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사그라든다.
신기한 일은 울음을 그치고 나서다. 왜 울었는지 묻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이유를 재잘거린다. 마음을 받아주는 일이 쌓일수록 아이는 선생님을 더 잘 따랐다. 그 밑바탕에는 아마 믿음이 있지 않았나 싶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에 대한 신뢰 말이다. 아이는 나를 안전한 사람이라고 인지했을 것이다. 언제고 다시 마음을 기대어도 될 만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서른 초반만 해도 나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기대려 했었다. 가끔은 괜찮지만 반복될수록 감정의 전이가 일어났다. 상대방이 부담을 느낀다는 걸 알고 나서야 자위하는 방법을 찾았다. 내가 느낀 감정은 나의 몫이라 생각하며.
신나는 노래를 듣거나 재밌는 책을 읽거나 마음을 글로 쓰며 다독인다. 하지만 슬픔에는 무게가 있어서 어떤 슬픔은 노래, 책, 글쓰기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럴 땐 슬픈 감정을 눈물에 담아 보낸다. 후련해질 때까지 한바탕 눈물 바람을 하는 것이다. 그럼 회색이었던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옅어진다.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익숙해져 가는 중이다.
나에게 자위보다 어려운 건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슬픈 고백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쭙잖은 말을 여러 번 건네기도 했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실수를 많이도 했다. 상대방에게 건네는 위로라고 여겼던 것이었다.
위로한다고 건넨 나의 말에 마음이 상한 몇 명을 잃고 나서야 방법이 잘 못 되었다는 걸 알았다. 위로에 관한 책을 읽고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유치원 교사였던 시절이 떠올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를 위로해 주던 나의 모습 속에 답이 있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건 나이와 상관없다는 걸 알았다.
위로는 상대방의 눈물이 잦아들 때까지 곁에서 기다려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손짓과 몸짓으로 위로를 건네는 것도 괜찮다. 손을 잡아주고, 등을 어루만져 주고, 포근하게 안아 주고, 티슈로 눈물을 닦아 주면 된다.
나의 아이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대한다. 첫째가 울면서 방문을 쾅 닫아버리면 살며시 노크해 본다. 반응이 없으면 감정을 추스르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 준다. 아이가 문을 열고 나오면 꼭 안아 준다.
스스로 감정을 추슬러보고 엄마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경험한 아이의 내면은, 지금보다 더 다단해질 것이다. 이런 시간이 더해져 성장한 아이는 무슨 일을 겪든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원하면 언제든 엄마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세월이 지나도 인내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의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찾아오면, 나는 한쪽 어깨를 내어준다. 울고 싶은 만큼 눈물을 토해낼 때까지.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할 수 있도록 귀를 기울이며, 그저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