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출간된 글

거절당할 용기

겨울, 다시 봄

by 이수아

올해 작년과 달라진 점이라면 나는 나를 가꾸기 시작했다. 글쓰기에 무리가 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운동, 글을 쓰느라 고생하는 손에 발라주는 핸드크림, 손 끝에 기운을 모아주려는 마음을 담은 네일아트, 내려온 속눈썹이 시야를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한 속눈썹 펌, 글을 쓰느라 굳은 어깨와 척추의 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 마음의 균형을 잘 잡아주는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 몸을 가지런히 하면 몸과 마음도 정돈된다. 나를 가꾸면서 외형도 조금은 달라졌고 자신감도 붙었다.


매일 손을 씻을 때마다 핸드크림을 바르고, 일주일에 한 번 굳은 몸을 풀고, 마음을 돌보고, 최소한 주 3회는 만보를 걷고, 한 달에 한 번 네일아트와 속눈썹 펌을 하러 가는 건 사실 귀찮은 일이다. 시간을 쪼개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이런 걸 해서 잘 보이고 싶은 사람도 없고 더 좋은 글을 쓸 거라는 확신도 없다.


그럼에도 돈과 시간을 들이는 이유는 나에 대한 대접이기도 하다. 잘되지 않는 한 가지는 먹는 음식이다. 야채를 풍부하게 먹고 규칙적인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자꾸 가족이 남긴 음식을 먹게 된다. 버려지는 음식은 환경을 오염시킬 것이고 돈을 들여 식재료를 사고 정성 들여 요리해서 아까운 마음도 든다. 장을 볼 때 꼭 필요한 것만 사서 먹을 만큼만 요리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아이들의 요구사항을 어느 정도 들어주다 보면 이것마저도 어려울 때가 있다.




나를 대접하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매번은 아니어도 종종 다른 누군가를 보게 된다. 그들은 나처럼 자신을 가꾸기 위해 가게를 찾아온 손님이다. 한 달 전 속눈썹 펌을 하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누군가에게서 따뜻함을 느꼈다. 속눈썹 펌을 마치고 나갈 채비를 할 즈음 다음 손님이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커피가 들려 있었다. 그 손님은 내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가게의 원장님은 “매번 이런 걸 사 와요. 번거로운데 그냥 오지. 고마워요.”하고 말씀하셨다. 그는 “같이 마시면 더 좋잖아요.”하고 웃는 얼굴로 답했다. 가게에 올 때마다 그는 커피를 사 오는 모양이었다. 빈손으로 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자신이 마실 커피만 사 오는 게 아니라 원장님까지 생각하는 그 마음이 참 다정했다. 다정한 온기는 곧 나에게로 스며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 어딘가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나도 예전엔 곧잘 무언갈 잘 사 들고 누군가에게로 가곤 했었다. 함께 나누는 걸 참 좋아했다. 기쁨과 즐거움은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반으로 줄어든다고 믿으며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정서를 나누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몇 해 전부터 주위의 사람들에게 무언갈 주었을 때, 필요가 없어서 받고 싶지 않다거나, 고마운데 지금은 음료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다거나, 너무 신경을 써 주어서 부담스럽다거나,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한 언행이 진정으로 하는 배려가 아니었다. 무언갈 주려면 상대가 원하는 걸 주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나도 거절하는 걸 어려워하던 사람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그때만큼은 어렵지 않다. 거절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일이 문화로 자리 잡아가던 시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매체를 통해 ‘사람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방법’과 같은 정보를 접하면 접할수록 부정적인 의사를 밝히는 일이 잘 못 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나도 거절의 어려움으로부터 점점 해방된 듯하다.


심리적인 거리가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무언갈 주고 싶어도 고민만 하다가 마음을 접어버리는 날이 늘어갔다. 정서를 나누는 일에도 상대방이 손을 내밀지 않으면 도움이 될 만한 말이어도 하지 않게 되었다. 가능하면 불필요한 말을 줄이는 게 관계를 더 좋게 만드는 거라고 여겨서였다. 삶이 바빠지고 시간에 쫓길수록 관계는 심플해져만 갔다.


속눈썹 펌 가게에서 커피를 사 들고 온 그와 그를 반기며 고마움을 표현하는 원장님을 보며 옳다고 여겨왔던 심플한 관계가 맞는지 다시 짚어보았다. 나의 마음에서 푸석푸석해진 감각이 감지되었다.



매주 화요일, 마음을 돌보기 위해 심리상담을 받으러 수원역으로 간다. 어제도 심리상담이 있었다. 수원역 12번 출구로 나가는 길에 커피와 주먹밥 그리고 떡볶이와 어묵을 파는 아주머니가 계신다. 심리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아주머니의 가게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사곤 했는데 어제는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는 길에 음료를 사기로 했다.


심리상담 선생님께서 어떠한 음료를 좋아하실지 몰라 한참을 메뉴판 앞에서 고민했다. 밤이기도 하고 선생님께서 커피를 드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난번 말씀해 주신 한 가지도 떠올라 커피보다는 다른 음료가 나을 것이었다. 망설임 끝에 녹차라테와 아메리카노를 샀다.


원하지 않는데 괜한 걸 드리는 게 아닌가 싶어 떨리는 마음으로 심리상담 장소로 향했다. 드시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냥 내가 두 잔 다 마시면 된다고 여기니 떨리던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커피를 마시고 싶으셨다면서 반갑게 날 맞이해 주셨다. 속눈썹 가게에서 느꼈던 다정한 온기가 조금은 더 커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건조해지는지도 모른 채 말라 가는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거나 더 늦게 발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온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 온기를 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용기를 낼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용기를 낸다면 한 사람의 작은 온기는 다정함을 안고 누군가에게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서서히 번져간다. 하루 중에 가장 잘한 일은 선생님과 함께 마실 음료를 사 들고 간 것이다.

음료를 나누어 마시는 동안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 거절당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었다. 지금의 내가 내야 할 용기가 있다면 ‘거절당할 용기’가 아닐까. 그 속에 있는 온기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마음을 촉촉이 하는 게 필요하다. 바짝 말라버려 바스러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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