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던 시절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담임선생님께서 장래 희망을 적어 내라고 종이를 나누어 주곤 하셨다. 몇 년을 곧잘 ‘선생님’이라는 세 글자를 적어 넣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어쩐지 멋져 보여서였다. 누군가를 가르칠 만한 성품을 가진 사람인지, 재능은 있는지,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중학생 때 꾸미는 일에 관심이 생긴 나는 언니에게 “어른이 되면 옷가게 주인이 되고 싶어.”하고 말했다. 예쁜 옷을 마음껏 입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때도 옷을 고르는 감각이 있다거나 옷가게 운영을 할 만한 능력은 따지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진학한 뒤에는 성적에 맞추어 대학과 학과를 선택해야 한다는 현실을 마주했다. 그래서인지 무언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품거나 꿈을 가지지는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일이 우선이었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로부터 손재주가 좋다는 말을 줄곧 들어왔으니 미용사가 제격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미용에 관련된 과를 가고 싶었지만 성적이 바닥이어서 대학 진학보다는 미용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학원이 더 나을 듯했다. 대학을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머니의 권유로 지방 전문대 뮤지컬과 에 입학하게 되었다. 뮤지컬과는 신생 학과여서 미달이었고 성적에 상관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노래, 춤, 연기 그 무엇도 잘하는 게 없어서 졸업 후가 막막했다. 간신히 1학년을 마치고 자퇴 길에 올랐다.
국가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이 수월할 것이어서 유치원 정교사 2급, 사회복지사 2급, 보육교사 2급을 주는 아동보육과로 재입학했다. 수능을 다시 볼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 성적으로는 다른 대학의 유아교육과나 아동학과를 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같은 대학 안에서 과만 바꾸어 다시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주간반과 야간반이 있었는데 주간반은 경쟁률 3:1, 야간반은 1:1이었다. 학과 사무실에 문의해보니 야간반이어도 주간으로 옮길 수 있다고 했다. 어느 반으로 입학해도 상관없으니 날 위해 준비된 야간반으로 들어갔다. 뮤지컬과 에서 아동보육과로 재입학하면서 미용사라는 직업은 염두하지 않았다. 손재주가 있으니 미용 기술을 배우고 싶었을 뿐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재주나 재능을 고려해 직업을 선택한 건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 전까지였다. 사회인이 돼서는 재능보다는 적성에 맞는지가 중요했다. 결혼 후 두 아이를 키우느라 바쁘게 살다 정신 차려보니 서른 중반이 되어 있었다. 초등학생 때 장래 희망란에 선생님을 적어 넣고 중학생 때 언니에게 옷가게 주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그 시절처럼 내가 가진 능력, 재능, 재주를 재지 않게 된 건 서른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독서는 나를 글쓰기로 이끌고 갔다. 책을 읽다가 “아!”하고 뻔쩍 생각이 떠오르면 컴퓨터방으로 달려갔다. 재능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무언가 떠올라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희한하게도 쓰고 싶었던 걸 잊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이런 순간에도 재능이 있고 없음을 따지지는 않았다.
멍청이 같아 보여도 하는 수 없이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쓰고 싶었던 글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거나 쓰다가 막히면 다시 읽던 책을 펼쳤다. 그럼 마법처럼 마음에 문장이 내려앉았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컴퓨터 앞으로 또 달렸다. 지금 와 돌아보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재능의 여부보다 더 강했던 듯하다. 그래, 무언가 하고 싶은 강한 욕구는 재능이 아니라 재능 조상님이 와도 상관없는 것이다.
최근 수원에 있는 독립서점 ‘삼월 책방’에서 만난 글지마 작가의 《글 쓰는 즐거움》에도 글쓰기와 재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글쓰기가 재능의 영역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절대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글쓰기는 고된 노동이다. 문장을 지웠다가 다시 쓰는 노동을 반복하며 나만의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이다. 어떻게 하면 독자가 뒤돌아볼까, 내 글이 그들에게 가 닿을까를 고민한다. 심지어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결론을 내리며 심신을 수련하기도 한다. ‘재능’이 경주자의 출발선을 앞당긴다면 ‘노력은 경주자가 꿈의 경로를 이탈하지 않게 붙잡는 뒷심이다. (p.65)
글쓰기를 시작한 지 2년째 되던 해였다. 어느 기성작가님의 소개로 작가들의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나처럼 습작생도 있었지만 대부분 출간 작가였다. 작가 생활이라던가 책 쓰기나 출판사 투고 요령을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단행본을 출간하고 작가가 된 그분들도 글쓰기에 재능이 있어서 시작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와 연결된 100명이 조금 안 되는 습작생, 글 벗, 출간 작가 중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수년 혹은 십 년 이상을 써도 여전히 글쓰기가 어렵고 힘들다고 말한다.
‘작가’라는 타이틀의 무게를 상당히 느끼는 습작생과 글 벗이 있다. 애초에 작가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나 무게를 생각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들의 말에 여러 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적으로 “작가라는 이름은 나랑 안 어울려.”, “작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야.”라는 말들이었다. “작가는 아무나 될 순 없어도 누구나 될 수 있어.” 하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오는 걸 꾹꾹 눌러 뱃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때도, 지금도, 작가는 누구나 될 수 있다고 여긴다. 읽고 쓰기를 이어가며 작가가 되어가는 거라고 믿는다. 작가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달아주는 명찰이다. 뻔뻔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책 출간 전에도, 나는 내 가슴에 ‘작가’라는 명찰을 스스로 달아주었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하겠다. “저는요. 매일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있거든요.” 하고 말이다. 작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매일 문장을 읽고 백지 위에 활자를 쓰는 사람은 작가다.
편성준 작가의 책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리 차일드(Lee Child)의 천재성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누구든 갑자기 잘 쓸 리가 없는데 작가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야구장에서 어떤 선수가 2루타를 치는 순간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하고, 리 차일드(Lee Child)는 방송국에서 해고당한 날 밖으로 나가 종이와 펜을 사 가지고 집으로 가 그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건 “사실 난 천재야”라는 고백이나 다름없는데도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데뷔 전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습작을 하면서 칼을 갈았는지는 관심이 없으니까. 그냥 지금 잘 쓰는 그들이 신기하고 부러울 뿐이니까. (p.81)
독자는 어느날 작품이 뿅 하고 튀어나온 듯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계적인 작가들도 사실 알고 보면 칼을 갈 듯 글쓰기를 연마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제는 내면 깊숙이 숨겨둔 칼을 꺼내어 놓자. 백지라는 숫돌 위에 활자를 쓰고 지우며 칼갈이를 멈추지 말자. 칼날이 바짝 설 때까지. 글쓰기에서 재능의 여부를 따지거나 작가라는 타이틀의 무게를 재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장인정신으로 노력하며 작가가 되는 그날까지 버텨내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