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혼자만의 힘으로 첫 책을 출간하는 사람이 드물다. 주위에 있는 출간 작가 대부분이 처음 출간할 당시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책 쓰기 학원, 책 쓰기 워크숍, 책 쓰기 수업, 기성작가의 도움, 어떠한 식으로든 말이다.
나 역시 동료 작가의 소개로 기성작가로부터 조언을 구했다. 2달간 400장에 달하는 두 권의 초고를 썼고 그 중 하나의 원고를 보여드렸다. 이대로도 충분히 출간 가능하다고 더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이대로 출판사에 투고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어딘지 부족해 보여서 새로 원고를 작성하기로 했다.
부족하다고 느낀 건 그간 습작해온 두 개의 작법인 소설 형식 에세이와 진술 형식 에세이를 정확히 그려내지 못해서였다. 게다가 나만이 가진 색깔도 확실히 담아내지 못한 듯 보였다. 내 삶을 아우르는 단어 4~5개를 정해 쓸 수 있을 만큼 글을 쏟아내라는 조언대로 18일에 걸쳐 48편의 글을 써냈다. 내 나이에 맞게 10편을 잘라내고 38편의 글을 출판사에 투고했다.
출간 작가 중 누군가는 200여 곳의 출판사에, 누군가는 1000여 곳의 출판사에 투고 후 한 통의 연락이 왔다고 해서 몹시 걱정하며 투고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결과가 좋았다. 45개의 출판사에 투고 후 이틀에 걸쳐 7통의 전화를 받았다.
운이 좋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 중에는 선인세는 둘째치고 저자에게 100만 원에서 200만 원을 요구하는 출판사가 있었다. 원고를 읽어보지도 않고 사진만 보고 연락을 준 곳도 있었다. 그래도 100만 원의 선인세와 인세 10%를 제안하는 출판사가 있어서 안도하며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출간을 꿈꾸며 책 쓰기 학원이나 수업을 듣는 작가 지망생 여러 명을 알고 있다. 이들은 몇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 혹은 천만 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목차와 글의 밀도를 올려줄 자료를 받았다. 그런데 1년이 다 되어 가도록 글을 한 편도 못 쓰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혼자 두 권의 초고를 쓰면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게 된 사실이다.
책 쓰기를 처음 해보는 사람은 전문분야가 없을 시 구성된 목차대로 글 쓰는 게 어렵다. 책 쓰기에 앞서 꼭 갖추어야 할 건 주제 글쓰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수년 혹은 수십 년을 한 곳에 몸담은 사람은 전문분야가 있다. 전문분야가 있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책 쓰기가 조금은 수월하다.
그러나 책 한 권 출간 이후 절필하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당시의 나는 습작생에 불과했고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해 그저 안타까웠다. 그렇게 소원하던 책을 짓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인데 왜 글쓰기마저 그만두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속상한 마음에 실례인 줄 알지만 질문했다. “글쓰기를 왜 내려놓으려고 하세요?”하고 말이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이유가 있었다. 도움을 받아 책 한 권을 쓰고 나니 더는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전문분야가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다음 책을 스스로 지어 올릴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한 것이다. 글쓰기를 놓지 말라고 나는 그들을 붙잡았다. 그러나 돌아온 건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글이 써지지 않아요.”라는 반복된 답이었다.
물론 세상엔 반대인 사람도 있는 법이다. 도움을 받아 책을 쓰고 나서도 계속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두 부류의 차이는 출간 이전부터 쓰는 삶을 살았느냐 아니냐로 나뉜다. 그러니까 글쓰기가 삶으로 들어와 있는 사람은 어떠한 현실 앞에서도 계속 무언갈 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막막함 앞에 좌절해 버리는 것이었다.
첫 시작은 도움을 받았더라도 다음 원고를 스스로의 힘으로 집필하는 사람들이 있고, 두 번째 원고도 첫 번째 원고처럼 도움을 받아 집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보며 ‘실력’을 떠올렸다. 실력을 갖춘 사람은 물꼬가 트이면 앞길을 개척해 나간다. 이건 등단작가도 마찬가지다.
나도 소설로 등단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등단을 위한 고시원이라고 불리는 한계레교육센터 합평회까지 나갔었다. 등단이라는 관문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단기간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게 중엔 1, 2년 만에 등단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등단 자중 소리 없이 사라지는 작가도 많다. 작가의 길로 들어선 뒤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는 사람은 실력자다.
작가에게도 생명이 있다. 생명줄을 이어가는 방법은 계속해서 작품을 써내는 길 하나뿐이다. 실력을 갖추고 세상으로 나와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책 한 권을 손에 쥐는 일이나 등단보다 먼저인 것은 실력을 갖추는 일이다.
이건 쓰는 삶을 살고 있는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퇴근 후 고단함을 이기고 무언갈 매일 쓰고 있다면 글쓰기가 삶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 삶이 지속될 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력이 갖추어지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이즈음에서 선물 하나 투척! 모든 장르에는 임계점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여긴다. 내가 혼자 400여 장에 달하는 초고 두 권을 쓸 수 있었던 건 에세이의 임계점을 넘겨서이다. 1000 편 이상의 에세이를 썼을 무렵 벼락을 맞은 듯 몸에 전율이 흐르던 날이 있었다. 그날 근거 있는 자신감이 솟아났다.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어떻게 쓰는지 알겠어.” 하고 말이다.
시의 임계점을 넘긴 사람은 시인이 되고, 소설의 임계점을 넘긴 사람은 소설가가 되고, 에세이의 임계점을 넘긴 사람은 에세이스트가 된다고 믿는다. 저마다의 끓어오르는 지점은 다르겠지만 작가를 꿈꾼다면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감각하기 전까지 입에 재갈을 물고서라도 쓰는 걸 멈추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외로움을 마주하는 자세》의 초고를 쓰면서 손수건을 말아 물고 1박 2일에 걸쳐 10편의 글을 완성했다. 원고 집필에 집중하다 보니 육아에 소홀해졌고 둘째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진 날이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날 나는 무조건 초고의 끝을 봐야만 했다. 쓰다가 컴퓨터 앞에서 고꾸라져도 좋다는 마음이었다. 해내고자 하는 의지력과 헌신적인 사랑이 있다면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할 수 있게 하는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다.
아직도 글 쓸 시간이 없다거나 글감이 없어서 글을 못 쓰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렇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그 속에 숨어 있는 게 변명은 아닌지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를 꿈꾸는 당신에게 필요한 건, 글을 쓰려는 의지와 글쓰기를 향해 헌신적인 사랑을 받칠 수 있는지이다. 진심에 불을 지펴줄 열정을 찾아 실력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