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덫

단편소설

by 이수아

이수아 단편소설


1.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던 지숙과 현우는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태섭은 비틀거리다 미처 신발도 벗지 못한 채 엎어졌다. 지숙은 황급히 태섭에게로 갔다. 아유, 술 냄새. 또 술이야? 요즘 따라 술을 자주 마시네. 지숙은 태섭의 신발을 벗기고는 무심히 현관으로 던졌다. 그리고 태섭을 방 쪽으로 끌어당기려고 애를 썼다.


마른 체형이어도 술에 취해 축 늘어진 태섭을 지숙 혼자 방으로 이동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우는 애를 먹는 지숙을 도왔다. 현우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침대에 태섭을 눕힌 지숙은, 태섭의 겉옷과 양말을 벗겼다. 벨트를 풀기 위해 태섭의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을 때였다. 태섭은 술에 취해 어눌해진 말투로 말했다.


“사…직서어…….”

“뭐라고?”


지숙은 곧바로 되물어 보았지만, 방 안에는 곯아떨어진 태섭의 코 고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잠자리에 누운 지숙은 잘못 들은 거라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왜인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밤새 몸을 뒤척인 지숙은 평소보다 일찍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갔다. 태섭이 일어나면 어제 했던 말이 무엇인지 확인할 참이었다. 멸치육수에 된장을 풀고 감자, 두부, 호박, 버섯을 썰어 넣으면서도 지숙은 방 쪽을 곁눈질하며 주시했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마자 지숙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던 일을 멈추고 쫓아가 물었다.


“사직서라니 무슨 말이야?”


태섭은 손바닥으로 명치를 문지르며 지숙의 시선을 피해 주방으로 갔다. 정수기에서 냉수를 받으며 어젯밤 일을 더듬었다. 집에 온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 필름이 끊여버려서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슬럼프 같은 거지 뭐. 왜 한 번씩 회사 때려치우고 싶을 때 있잖아…… 이러다 말겠지.”


태섭은 아무 말이나 해서 대충 둘러대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화장실로 갔다. 한 회사를 십칠 년간 다니면서 태섭의 목표는 늘 한결같이 진급이었다. 진급은 인턴, 사원, 주임, 대리, 과장, 부장 순으로 올라가는데, 대부분 대리까지는 순탄히 가지만 과장이 되는 것은 반 정도라서, 태섭은 과장이 됐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과장 다음엔 부장인데 한 부서에 과장이 열 명이면 그중 두세 명만 부장으로 승진한다. 부장을 거쳐 임원이 되는 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능력이 없으면 사회에서 도태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태섭은 부장으로 승진하기에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회사에서는 그런 태섭의 책상을 치우는 대신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일을 맡기지 않았다.


태섭의 월급은 이만하면 꽤 괜찮았다. 월급을 받기 위해 소리 없는 무시와 쪽팔림을 참아내며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태섭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제 발로 걸어 나갈 때까지 궁지로 몰아붙이는 회사 생활을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치, 회사에서 쓸모를 다했으니 그만 자리를 내어놓으라고 무언의 닦달을 하는 것 같았다.


다른 회사로 옮겨야 할지 고민해보았지만, 마흔 중반에 이직은 내키지 않았다. 태섭은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경제적인 자유를 찾고 싶었다. 그날 이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숙이 알면 난리가 날 테니 당분간 비밀로 하고, 퇴직금과 모아두었던 돈으로 투자처와 창업 계획을 세웠다.


창업은 언젠가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호프집으로 하고, 투자는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인 수익형 호텔이 좋을 듯했다. 알아보니 수익형 호텔로 돈을 번 사람들이 회사 내에서도 많았다. 태섭은 너도나도 뛰어들었던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돈을 날린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


천만 원을 잃은 뒤에야 자신의 신념과 정보 그리고 실태조사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투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태섭은 실패 후 나름의 투자의 기준이 생겼다. 호프집창업은 회사를 먼저 퇴사하고 치킨집을 두 개나 운영하는 입사 동기 Y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프랜차이즈를 계약하면 빠르고 손쉽게 호프집을 개업할 수 있지만, 가맹비를 포함해 별도로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손품과 발품을 좀 팔더라도 개인 창업이 났겠다고 태섭은 생각했다. 손님을 끌어당길 미끼상품으로 노가리와 생맥주 한잔을 묶어서 파격적인 금액으로 내놓으면 인기몰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