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
호프집을 자리로 봐두었던 점포를 계약하기로 한 날, 태섭은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사직서를 제출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직서는 빠르게 수렴됐다. 하루 만에 인사과에서 퇴사 승인을 알려왔다. 태섭은 지숙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더 미룰 이유가 없었다. 태섭은 종이 두 장을 내밀며 말했다.
“호프집 해보려고…….”
호프집 점포 계약서와 수익형 호텔 계약서였다.
“이게 뭐야?”
지숙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십칠 년이나 일했으면 할 만큼 했어. 월급 받는 거 지겨워. 나도 내일 해보고 싶어. 적금 부은 거랑 퇴직금 합쳐서 수익형 호텔에 투자도 할 거야.”
공기로 가득 찬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지숙은 질문을 쏟아냈다.
“퇴직금 얼마나 받았어? 호프집 차리는 데 비용은 얼마나 들어? 어디에 차릴 건데? 자리 봐둔 곳은 있어? 수익형 호텔에 얼마나 투자했어?”
“한가지씩 물어봐. 말하려면 길어. 천천히 말해줄게. 확실한 건 이번엔 제대로 알아보고 계약했어.”
자신만만해하는 태섭과 달리 지숙은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가라앉는 분위기를 감지한 태섭도 침묵했다. 먼저 침묵을 깬 건 지숙이었다. 지숙은 무엇인가 결심한 듯한 비장한 얼굴을 하고는 낮은 톤으로 말했다.
“하긴 회사가 평생직장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저지르지 않으면 언제 또 하고 싶은 일을 해보겠어. 이왕 하는 거 잘해 봐.”
태섭은 대답 대신 굳은 다짐이라도 한 듯 어금니를 꽉 물었다. 지숙의 동의를 얻은 태섭은 더 바쁘게 움직였다. 전투적인 추진력을 발휘해 넋 달 뒤에 호프집을 오픈했다. 호프집은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문을 열었다. 태섭은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하면서도 회사보다 낫다고 했다.
동료와 부장에게 치이는 것도 지긋지긋하다며, 몸 바쳐서 일할 거면 자기 사업을 하는 게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거라고 말이다. 요식업에 성공한 사람들은 삼 년은 자기 돈으로 메꿔가면서 운영해야 한다고 했지만, 수단이 좋은 태섭은 초반부터 자리를 잡아가면서 인건비와 임대료를 낼만큼 벌어들였다. 하지만 순조로움은 얼마 가지 못했다.
수익형 호텔이 문제였다. 수익형 호텔은 1억에 객실 세 채를 받는 조건이었다. 태섭은 퇴직금으로 부족한 금액을,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놓고서도 지숙에게 말하지 않았다. 호텔의 위치와 분양받은 객실 그리고 운영계획까지 철저히 조사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호텔 투자에 확신이 있었던 태섭은 지숙에게 돈다발을 안기며 놀래 켜 줄 날만을 생각했다. 태섭은 받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은행 돈을 빌려 객실 여섯 채를 분양받았다. 불안한 날엔 수익형 호텔이 지어지는 광경을 눈으로 확인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수익형 호텔로 먼저 돈을 번 사람들을 의지했다. 그러나 객실 여섯 채를 받기 위해 들어간 2억은 계약금일 뿐이라는 사실을 태섭은 미처 알지 못했다. 계약서에 적힌 깨알 같은 조항을 읽는 둥 마는 둥 한 탓이었다. 분양사무실에서도 다른 설명은 해주지 않았다. 손에 객실이 넘어오려면 잔금이 필요했다.
급한 데로 친척과 지인에게 돈을 빌렸다. 모자라는 금액은 대부업체를 통했다. 나중에 객실을 되팔아 갚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분등기였던 객실은 공동소유로 묶여버렸다. 되팔려면 소유자의 전체 동의를 얻어야만 했다. 소유자 중 외국에 거주하는 사람도 있어서 전체 동의를 얻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손에 등기가 넘어와도 마음대로 되팔 수 없었기에 이자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이자를 감당하기에는 호프집 수입으로 어림없었다. 호프집을 처분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재산 압류 통지서가 날아 온 날 현실 저 끄트머리에 있는 벼랑으로 내몰린 것만 같았다. 지숙은 이번 고비만 넘길 수 있다면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을 태세로 법률사무소를 찾아갔다. 법률사무소에서는 빚을 반 이상 줄일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개인파산을 하는 것이었다. 개인파산을 하면 전 재산이 압류되기 때문에 태섭의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 모아둔 돈을 지키려면 위장이혼을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