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3.
거실을 감도는 무거운 공기. 태섭은 고개를 떨구고 소파에 앉아 줄담배를 피워댔다. 눈시울이 붉어진 지숙이 손등으로 오른쪽 눈 밑을 훔치며 말했다.
“다 같이 거리로 나앉을 수는 없잖아. 생활비는 내가 어떻게 해볼 테니까 당신은 개인파산 서류 준비해. 개인파산 신청하려면 동현이는 당신이 데리고 있어야 한대. 그리고 여기에 도장 찍어.”
지숙은 협의이혼 확인 신청서를 탁자에 올려놓고 이어서 말했다.
“당신 월급에서 비상금으로 떼어 놓은 돈이 있는데 동현이랑 지낼 곳 구하려면, 이거라도 지켜야지. 양쪽 부모님께는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 나는 당분간 친구 집에서 지낼게.”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은 다 좋은데 왜 이렇게 현실적이지 못해?”
현우는 손으로 귀를 감싸고 구석으로 갔다. 내면에서 새어 나오는 어둠을 아무도 모르게 가두려는 듯 눈을 감고 노래를 불렀다. 듣기 싫은 소리에서 멀어지려는 안간힘이었다. 허공을 바라보던 태섭의 입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담배가 매캐함을 뿜으며 손가락 가까이 타올랐다.
태섭은 마지막 불씨를 끄고 협의이혼 서에 도장을 찍었다. 지숙은 그것을 가방에 넣고 현우에게로 걸어갔다. 지숙의 손길이 느껴지자 현우는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지숙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현우의 얼굴만 바라보다 일어섰다. 현우의 시선은 캐리어에 가 닿았고, 지숙은 거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캐리어를 끌고 나갔다.
두 달이 지나던 어느 날 지숙이 흰색 봉투를 들고 찾아왔다. 모아두었던 돈과 아르바이트비를 합친 거라고 했다. 태섭은 액수를 확인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와 한 시간이 넘도록 보증금, 월세 이런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짐을 쌌다. 현우는 왜 짐을 싸야 하는지 몰랐지만, 태섭의 말대로 교과서와 필기구 그리고 곰 인형을 챙겼다. 짐을 싸던 중 벨이 울렸다. 태섭이 문을 열어주었고 낯선 사람 세 명이 들어왔다.
“압류 진행하겠습니다.”
그들은 빨간딱지를 꺼내 뒷면을 벗기고 집안 곳곳에 붙였다. 어리둥절해 있는 현우에게 태섭은 빨간딱지가 붙은 물건은 만지면 안 된다고 했다. 아끼는 곰 인형에 빨간딱지가 붙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던 현우는 손에 들고 있던 곰 인형을 윗옷 속으로 넣고, 책상 밑으로 들어가 공 벌레처럼 몸을 말았다.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현우가 살며시 눈을 떴을 때 작은 빛이 실눈 사이로 번지며 눈동자를 통과해 나갔다. 눈앞이 흐렸다가 선명해지면서 가장 먼저 빨간딱지가 눈에 들어왔다. 집 안에 있는 모든 가전과 가구에 이름표처럼 빨간딱지가 붙어 있었다. 두 달 전, 초등학교 입학선물로 받았던 책상을 현우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태섭이 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바닥 생활이 시작되었다. 바닥 생활을 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다. 열다섯 명의 사람이 찾아왔다. 경매 집행관과 집행관사무실 직원 두 명 그리고 나머지는 경매꾼이었다. 경매집행이 끝난 뒤 태섭은 현우를 데리고 나갔다. 택시를 타고 양쪽으로 가게가 빼곡한 길목을 몇 차례 지났다. 점선 잇기라도 하듯 전봇대가 늘어선 곳에서 멈추었다.
현우의 시선 위로 오르막이 펼쳐졌다. 현우는 테섭을 따라 오르막을 걸었다. 숨이 차오르면 모퉁이에 앉아가며 계속해서 걸었다. 오르막을 지나자 좁은 평지가 나왔다. 옹기종기 붙어 있는 키 작은 건물들 사이로 한 사내가 손짓했다. 태섭은 현우를 데리고 2차선을 건너 사내가 있는 쪽으로 갔다. 갈색 벽돌로 된 건물 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