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가지 형식의 에세이>
3. 논문형식 에세이
‘논문은 어떠한 주제에 대해 연구한 결과나 의견 등을 일정한 형식에 맞추어 쓴 글이다.’ 논문은 제목, 요약, 목차, 서론, 본론, 결론, 참고문헌으로 이루어진다. 논문형식을 에세이로 적용할 때 서론, 본론, 결론이 두드러지게 쓴다. 서론에는 문제를 제기하고 본론에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문제를 해결한다. 결론에는 글에 대한 전체적인 의견을 담는다. 참고문헌은 출처를 밝히고 한자어도 쓴다. 논문형식 에세이에 어울리는 글감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글감에 따라 논문형식으로 에세이를 쓸지 결정한다.
제목 : 한 사람을 감각할 수 있게 하는, 언어
처음 글쓰기 모임에 들어간 건 3년 전 가을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글쓰기 수업을 선택한 건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수업은 100% 첨삭으로 이루어졌다. 첨삭(添削)은 ‘시문(詩文)이나 답안 따위의 내용 일부를 보태거나 삭제하여 고침.’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사전) 사전적 의미 그대로 첨삭 수업은 수강생의 원고를 수정하여 지도하는 방식이다.
수강생들이 돌아가며 글을 낭독하면, L 선생님께서는 글의 맥락을 바로잡고, 문장 하나하나 꼼꼼히 봐주셨다. 더 좋은 문장이 되기 위해 어떠한 단어를 선택할지, 주어를 어느 위치에 놓아야 문학적인 맛을 살릴 수 있는지, 접속사와 부사가 그 자리에 적합한지, 진술과 묘사가 함께 담겼는지, 전하려는 메시지의 어폐는 없는지, 사유의 깊이감과 통찰력의 수준이 전보다 나아졌는지, 등이었다.
그중 L 선생님께서 가장 많이 언급하신 건 ‘묘사’였다. 묘사를 잘하고 싶었던 나는 한동안 선생님께 자주 질문드렸다. 묘사가 무엇인지, 묘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좋은 묘사의 예시는 어떠한 것인지, 등을 여쭈었다. 소설책에서 찾은 묘사를 발췌하고, 내가 묘사한 문장을 수업에 들고 가기도 했었다.
L 선생님께서는 애매한 답을 하실 때가 많았다. 어느 날에는 내가 한 묘사를 읽으시고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건 묘사가 아니에요.”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럼 묘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생님께서 보여주세요.”하고 물었다. 명쾌한 답을 원했는데 돌아온 건 당황스러움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날 물끄러미 보시더니 “아무튼 그런 게 있어요.”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묘사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기며 혼자 답을 찾기 시작했다.
L 선생님의 책 전권을 반복해 읽으며 구조를 파악하고 묘사를 찾았다. 그러다 오탈자를 발견했고 형광펜으로 표시해 놓았다. 그건 ‘~할 밖에’라는 문장이었다. ‘~할 수밖에 없다.’라고 써야 하는데 ‘수’ 자가 탈락한 거라고 여겼다. 이상한 일은 ‘~할 밖에’라는 문장이 한 권의 책에서만 여러 번 반복된 것이다. 그제야 오탈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L 선생님께서 의도하고 쓰신 문장이었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어감’이라는 단어였다. 선생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던 ‘문학적인 맛’이라는 건 어쩌면 ‘언어적인 감각’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그 뒤로 나는 문장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나도 모르게 틀에 박혀버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와 같은 문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서 ‘불구하고’를 ‘그렇기 때문에’에서 ‘때문에’를 제외해도 말이 된다. ‘~하기 때문이다.’를 ‘~이기에 그렇다.’라고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다. 말이 되는지 예시를 들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럼에도>
내가 한심해 많이도 울었다. 그럼에도 고통을 감각하며 계속 아픈 날을 반복해 글로 썼다.
<~하기 때문이다. -> ~이기에 그렇다.>
목표 의식과 끈기는 이어져 있어서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영향을 받는다. 뚜렷한 목표를 세웠더라도 희미해지는 순간 끈기를 잃을 수 있기에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 때문에>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때문에 주 3회는 매운 음식을 찾게 된다.
올해 3월부터 K 작가님에게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언어적인 감각은 한 층 더 확장되었다. ㄲ, ㄸ, ㅆ, ㅉ처럼 된 발음 소리가 나는 단어가 섞인 문장을 읽을 때 어감이 세진다는 걸 K 작가님께서 알려주셨다. 지난 수업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에서 ‘그럼에도’ 뒤에 ‘불구하고’가 붙으면 무게감이 느껴지고 문장이 딱딱해진다는 걸 알려주시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를 ‘그래도’라고 써도 되는데 ‘그럼에도’를 왜 선택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럼에도’와 ‘그래도’는 앞의 내용과 상반되는 내용이 뒤에 올 때 문장을 이어 주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부사이다. 둘 다 쓸 수 있지만 ‘그래도’보다 ‘그럼에도’를 자주 사용하는 건 태도와 취향의 영향을 받아서이다. 애매함은 지양하고 확실함을 지향해서 ‘그래도’보다는 조금 더 확실하다고 느껴지는 ‘그럼에도’가 나의 태도와 잘 어울린다. 나의 취향은 적당한 무게를 가진 사람이다. ‘그래도’는 너무 가볍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너무 무겁다. ‘그럼에도’는 너무 가볍거나 무겁지 않아서 적당한 무게감을 언어로 표현하기에 취향 저격이다.
이처럼 누군가의 언어는 한 사람을 감각할 수 있게 돕는다. 언어는 그 사람의 성향, 취향, 태도, 정서를 담고 있어서 소중한 사람의 글을 한 문장도 허투루 읽을 수 없다. 그의 세계를 알고 싶은 만큼 문장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읽어내기 위해 반복해 읽고 사유한다. 진솔함이 느껴지는 글일수록 의심 한 점 없이 그 속에 담긴 그와 세계를 온전히 감각하며 받아들인다. 언어를 통해 다가가고 곁에 머문다. 그렇게 나는 그와 가까워진다.
가까워진다는 건 얼굴을 마주해야지만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글을 통하면 새로운 사람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글도 일종의 대화여서 친밀도를 쌓기에 부족하지 않다. 글로 하는 소통은 서로의 거리를 좁혀주는 데에도 충분하다.
화해하고 싶거나 전하기 어려운 메시지가 있을 때 언어는 신비의 묘약이 되어준다. 편지에 마음을 담아 전하는 순간 모든 게 상관없어진다. 어떠한 답이 돌아와도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그저 진심을 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된다. 나는 언어에 담긴 나와 누군가를 그 정서와 마음을 아낌없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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