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를 바라봐 주는 시선, 그 속의 다정함
겨울, 다시 봄
2019년의 어느 날, 집 근처에 있는 이천시 마장 도서관에서 11명의 작가가 배출되었다. 그때 작가들의 책을 기획한 K 작가님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K 작가님의 100일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며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100일 글쓰기는 말 그대로이다. 100일간 글을 쓰는 모임. 주말을 포함해 명절과 같은 공휴일에도 글쓰기는 지속된다. 쓴 글을 카카오톡으로 공유하며 인증한다. 100일이 지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100일간 글을 이어간다. 이 모임을 해 오며 나는 자주 황선숙 작가를 떠올리곤 했다.
그는 마장 도서관이 배출한 11명의 작가 중 한 명이다. K 작가님의 도움을 받아 에세이집 《서른여섯, 나와 사랑에 빠지다》를 출간했다. 그는 글 벗이라는 단어조차 몰랐던 나에게 그 뜻을 알려주었다. 글 벗은 글로 사귄 친구이다. 그는 처음으로 나를 글 벗이라고 불러주었다.
그 당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서른이 넘도록 글을 제대로 읽어 보거나 이해하고 넘어간 경험이 몹시 적어서 내 어휘력은 형편없었다. 대게 알 법한 단어를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단어의 뜻을 알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이었다. 너무 모르면 무식하게 보일 걱정 같은 건 들지 않는다. 나에게 생소한 단어를 그에게 덥석덥석 물어보았다.
그는 그럴 때마다 만개한 꽃처럼 웃으며 다정하게 조곤조곤 알려주었다. 내 눈에 그런 그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언젠가 그에게 “언니는 모르는 게 없어요.”하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는 국문학과를 졸업했다고 했다. 그 시절엔 시를 좋아해서 교내 잔디에 앉아 친구와 시를 읽고 쓰기도 했었다고 말해주었다. 시인이 될 줄 알았다면서 수줍게 웃는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의 책 《서른여섯, 나와 사랑에 빠지다》를 들고 마장에 있는 할리스 커피전문점으로 달려갔던 그날도 선명히 기억난다. 한여름이었고 그는 소라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책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나는 놀란 얼굴로 왜 이렇게 말랐느냐고 어디 아픈 건 아닌지 물었다. 책을 쓰느라 힘이 들었다며 괜찮다고 날 안심시켜 주었다.
대단한 것도 없는데 그는 늘 나에게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매일 무언갈 읽고, 질문하고, 글을 쓰는 게, 대단한 거라고 말이다. 어휘력이 조금씩 늘어가고 무언갈 알아갈 때마다 나는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 종종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날들도 있었다.
약해 보이기는 싫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지냈지만 속은 말이 아니었다. 국문학과를 나온 그에게 내가 글 벗이라는 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럴 때면 그는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말해주었다.
“나의 글 벗, 대단해.”
《서른여섯, 나와 사랑에 빠지다》는 엄마, 아내, 딸, 며느리와 같은 여러 역할을 하며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나가는 한 사람의 기록이다. 그렇게 저자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간다. 나도 책과 저자를 통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갔다.
황선숙 작가는 2년 전의 어느 날, 남편을 따라 중국으로 갔다. 그가 있는 지역에서는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을 잘 못 한다고 했다. 속도가 무척 느리지만 그래도 한 번씩은 안부를 전해왔다. 언젠가는 국가에서 막아 놓은 적도 있어서 한동안 연락이 끊긴 적도 있었다. 1년만 있다가 온다고 했는데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백일 글쓰기 모임을 나오지 못할 것 같다. 그의 책을 기획해 주신 K 작가님과의 인연을 이어가는 것으로, 이렇게라도 그와의 추억을 붙잡고 싶어서.
작년 어느 날 그와 함께한 시간들을 회상하다가 문득 알게 되었다. 나는 늘 그에게 힘을 얻었는데 그가 힘들어할 때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제대로 위로해 준 순간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을. 그때부터 그가 돌아오는 날을 애타게 기다리게 되었다. 다시 만나게 되면 이제는 내가 먼저 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마장 도서관 서가에는 황선숙 작가와 내 책이 놓여 있다. 조금은 게을러졌지만 난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지금의 나를 본다면 사랑스러운 문장을 잘 쓰는 그만의 언어로 다정히 말해 줄 것만 같다.
“나의 글 벗, 대단해.”
처음으로 에세이집을 출간한 이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의 고된 무게감을 느끼고 있다. 그 무게에 짓눌리는 날에는 좀처럼 문장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막혀버린 글쓰기도 풀리지 않는다. 독서하고 글을 쓰며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늘 즐거웠는데 요즘엔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곤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맴돌다가 그가 해주었던 말을 떠올릴 때가 있었다. “나의 글 벗, 대단해.” 이 말을 되뇌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가장 열정적으로 독서와 글쓰기만을 바라보며 달려갔던 지난날들이 기억나서. 지친 마음에 힘이 생긴다.
지금보다 글을 더 못 쓰고 부족한 게 많아서 글쓰기 모임에서 무시받던 나를 알아봐 준 그는 나에게 소중하고 고마운 글 벗이다. 글쓰기를 하며 만난 사람 중 그는 나의 첫정이다. 누군가의 다정한 언어는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다.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필요한 순간 불쑥 나타나 응원이 되어준다. 나는 그에게서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을 배웠다. 그건 한 사람이 가진 능력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 주는 다정한 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