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출간된 글

뿌리를 단단히 해 줄 밑거름

겨울, 다시 봄

by 이수아


엊그제부터 기운이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오전 시간에는 늘 책을 읽거나 글을 썼는데 그저 잠이 쏟아졌다. 이틀간 한 줄의 문장도 읽지 않았고 글도 쓰지 않았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설거지, 빨래, 바닥 청소를 미뤄두었다. 하교 시간 전까지 다시 잠을 잤다. 첫날은 입맛도 없어서 아메리카노 한 잔 이외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둘째 날은 마음에 들어찬 한기를 누그러뜨려 보려고 따뜻한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도 좀처럼 마음이 나아지지 않았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로서 해야 할 일과가 있기에 마음 내키는 데로 할 수 없는 처지이다. 아이들을 학원에 바래다주고 데려오는 일과 밀린 설거지를 하고 저녁을 챙겨주었다.



어제는 심리상담이 있는 날이었다. 의욕이 없어서 한 주 쉴까 고민하다가 집에만 있으면 계속 몸이 쳐질 것 같아서 심리상담을 받으러 수원역으로 갔다.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한 주를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다. 나는 상심 가득한 얼굴로 공모전 결과를 말씀드렸다. 어제부터 오전 내내 잠을 잤다고 하며 속상한 마음을 전했다.


학창 시절부터 사회인이 되어서까지 무언갈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특히 성과를 내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 뿐이었다. 그건 대학을 다닐 때 상위 10%의 학생에게만 주어지는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받는 것이었다. 교내 축제가 열리던 날에도, 시험이 없는 날에도,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 결과 간절함은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 취득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16년이 흘렀다. 나는 서른여덟이 되었다. 대학생 시절처럼 올해 바라고 원하는 게 생겼다. 너무 오랜만에 감각하는 간절함이었다. 나의 세계를 담아낸 글이 빛을 보길 바랐다. 공모전에서 꼴등으로라도 입상을 하고 싶었다.




3년째 같은 공모전에 지원하고 있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너무나도 공모전 결과가 기다려졌다. 지난 공모전의 수상자들의 글을 읽어보았기에 수상자를 발표하기 일주일에서 열흘 전에 입상자에게는 먼저 연락이 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공식적인 발표 날짜 2주 전부터 이메일이 왔다는 알람이 울릴 때마다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함을 열어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이틀 전, 수상자들에게 이미 연락이 갔다는 글 한 편을 보게 되었다. 왈칵 눈물이 났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느닷없이 또 눈물샘이 가득 차올랐다.


심리상담 선생님께서는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나에게 “위로의 말은 아닌데요. 1년을 준비한 사람도 있을 텐데 몇 달 준비하고 응모했으니 그렇게 상심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하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난 듯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반박이라도 하듯 “수상자 중에는 집필 기간이 2~3주 정도였다는 작가도 있어요. 당선은 준비기간과 상관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렸다.

상담은 공모전에 관한 이야기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입으로 말하는 것과 다르게 마음에서는 상담 선생님의 말씀을 곱씹고 있었다. 그 말에는 정말이지 한치의 사심이 담기지 않았다. 명확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었다. 상담 선생님의 말씀이 옳다. 무척 간절했고 그러한 마음으로 글을 쏟아내었기에 입상을 하지 못해 속상한 건 말할 것도 없지만, 모든 걸 글에 쏟아붓고 그 결과를 간절히 기다린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선생님 말씀에 담긴 속뜻 그대로 나보다 더한 에너지와 시간을 들여 최선을 다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최선 그 너머를 받친 누군가도 있을지 모른다. 거기에 비하면 무기력에 빠질 만큼 상심할 일은 아닌 듯하다.




나는 심리상담을 통해 이해, 공감,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지지만을 받지는 않는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이번처럼 내가 감정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쪼그라든 몸을 곧추세웠다. 공모전에 떨어졌다고 쳐질 필요는 없지, 내년에 다시 도전하면 돼,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구겨진 마음을 조금은 펼 수 있었다. 숨어버렸던 자신감도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누군가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라고 했다. 그만큼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다는 걸 이미 알고 있던 나였다. 감정의 늪에 빠져서였는지 이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아직 나는 실패의 경험이 적고 내공도 부족하다. 실패가 쌓인 뒤에 성공이 찾아온다면 기쁨과 감사함이 몇 배가 될 거라고 믿는다. 성공했다고 여길 만큼 무언갈 크게 성취했다면 그건 내가 잘해서라기보다는 곁에 있는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 덕분일 것이다.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응원해주고 때로는 약이 되는 쓴소리도 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앞으로 또다시 실패하더라도 침몰하지는 않을 것이다.




간절함을 품을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한다. 간절했기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나의 능력을 다해서 실망감도 크지만 이러한 경험은 지금 내리고 있는 뿌리를 단단히 해 줄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오늘 밤에도 엊그제와 어제처럼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좀 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은 무기력에서 벗어나 내가 할 일을 하고 있다. 책을 읽고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기 위해 묵묵히 컴퓨터 앞을 지키고 있다.


비록 원하는 결과는 아니지만 공모전에 낼 글을 쓰는 동안 즐거웠다. 공모전에 응모하던 날에는 한 권의 책이 될 초고를 완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래 이거면 되었다. 내가 멈추지만 않는다면 나만의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나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Bye. The 10th brunch book con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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