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 대한 집착이 마음에서 놓아진 건 책과 글쓰기 그리고 나이 많은 친구를 나의 친구로 맞이하면서였다. 친구는 꼭 인간과 인간만이 맺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님을, 나이와 상관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시골로 이사하기 얼마 전 집을 보러 왔을 때 한 할아버지께서 우리 집의 터가 좋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사 후 이곳으로 무사히 왔다는 소식을 전하러 그 할아버지를 뵈었던 날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3대째 이 동네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조부모와 부모님의 대를 이어 지금 사는 집에서 여태까지 살아오신 것이었다. 이제는 전설처럼 느껴지는 할아버지의 조부모님과 부모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할아버지가 살아오신 세월을 들으며 긴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언젠가는 친구였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그들의 이야기에 나는 대뜸 “저 친구 없어요. 이사 와서 친구가 없는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친구가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손사례를 치며 “아휴, 친구 없어도 돼. 친구 있어서 뭐 해.”하고 답하셨다. 나는 “그래요?”하고 말하고는 할아버지를 따라 웃었다. 할아버지는 웃긴 뭘 웃냐고 하시다가 “할머니가 있어. 나 만나서 아주 고생을 말도 못 하게 했어. 나랑 할머니랑 너랑 친구 하면 되지!”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우리는 5년째 친구로 지내고 있다.
작년 한 해 사회 불안증으로 집안에서만 살았을 때였다. 할머니는 우리 집 대문 앞에 자주 앉아 계시다가 돌아가곤 하셨다. 내가 걱정되어서 오신 걸 알기에 나가볼까 했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에 두려움이 들어 생각만 하다 말았다. 그러던 중 사회 불안증이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완치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원하는 병원의 의사 선생님 조언대로 올해 1월, 집 밖을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학교 운동장이라도 한 바퀴 돌 요량으로 현관문을 열고 나갔던 날 그날도 할머니는 대문 앞에 앉아 계셨다. 그 옆에 유모차가 있었다. 유모차는 거동이 어려운 할머니의 발이었다. 유모차에는 두 장의 박스가 고이 접힌 채로 담겨 있었다.
할머니의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이제 나오는 거여? 나랑 놀자. 박스 주우러 가여.”하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첫마디에 웃음보가 터진 나는 너무 웃겨서 눈물이 고였다. 집으로 들어가 차 키를 들고 나왔다. 차를 타는 것조차 힘들어하셔서 할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걷는 걸음 뒤를 차로 따라갔다. 박스가 보이면 차에 박스를 실었다. 박스를 할아버지와 할머니 댁 마당에 내려 주고 믹스커피 한 잔을 얻어 마셨다.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나이 들어서 오토바이를 못 탄다며 나에게 김치찌개용 고기를 사다 달라고 부탁하셨다. 고기는 좋아하지 않아서 잘 안 드신다는데 겨울이 되면 활동량이 줄어들어 근육이 부실해지니 한 번씩 고기를 잡수신다고 했다. 이가 안 좋아서 구운 고기는 안 되고 꼭 김치찌개용 고기여야 한다고 했다.
나는 기꺼이 고기를 사다 드렸다. 그 뒤부터 매해 년 겨울이 되면 김치찌개용 고기를 사서 가져다 드리게 되었다. 언젠가는 곰솥에 돼지 목살을 묵 익혀 간장 양념을 해 찜을 해다가 드렸다. 고기가 부드러워서 잘 드셨다고 했다. 이걸 아직도 두고두고 말씀하신다. 자식들이 너무 바빠서 이런 걸 못 해온다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연세가 올해로 90세 84세이다. 잘 걷지도 못하시면서 5년 동안 매해 년 가을에 수확한 배추와 무를 가져다주신다. 올해는 정말이지 안 받으려고 했는데 할아버지의 말씀 한마디에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집에서 애들 만들어 먹이려면 힘들잖아. 앞으로 얼마나 더 줄 수 있을지 몰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주고 싶은 그 마음을 잘 받아 배추와 무를 손질해 아껴 먹고 있다. 먹을 때마다 아까워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친구란 나이가 상관없다는 걸 나에게 알려주셨다. 어릴 적 단 한 번 왕따를 경험하고 나서 늘 마음에 품고 살아온 깊고 넓은 친구 관계에 대한 집착이 놓아지는 순간이었다. 인생이라는 건 참 알 수 없다. 마음에 요동치는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은 뒤에야 그토록 원하고 바랐던 걸 손에 쥘 수 있으니. 서른여덟을 살아오며 이렇게나 소중하고 귀한 친구는 없었다. 내 생에 단 한 번인, 두 번 다신 만나지 못할, 나의 친구의 곁에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내년, 내 후년에도 겨울이 되면 김치찌개용 돼지고기를 사다 드릴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