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주정 같은 레퍼토리

by 이수아

햇수로 4년째 글을 쓰고 있다. 3년간 에세이만 천 편 조금 넘게 썼다. 발광하듯이 글 썼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글쓰기와는 아주 먼 사람이 어서였다. 학창 시절 12년 중, 중학교 2학년을 제외하고 전교 꼴찌에서 두세 번째를 오갔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고 아이의 엄마가 돼서까지 제대로 된 문장 하나를 써본 기억이 없다. 무언갈 쓰긴 쓰면서 살아왔는데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어휘도, 어느 것 하나도, 형편없었다. 내가 주로 쓴 건 단어의 나열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유치원 교사를 할 땐 동료의 도움을 받았고 결혼해서는 모든 글과 관련된 건 남편이 해 주었다.


첫 아이를 낳고 동네 엄마 몇과 친해졌는데 책을 좋아하는 한 엄마에게 얼마나 무시를 받았는지 모른다. 멸시라고 해야 하나. 그는 책을 안 읽는 사람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나는 아마 다른 세계에서 온 무엇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서른 넘어까지 문장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게 난독증 때문이라는 것도 알지 못해서 반복된 질문을 많이 했었다. 부끄러운 건 알아서 질문을 멈추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다 보니 자꾸만 오해가 쌓여서 결국 관계가 파국을 맞는 지경에 이른 경험이 여러 번이었기 때문에. 그럴 바엔 철판을 깔고 계속 물어보는 편이 나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딱히 없었다. 책을 쓰고 싶은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마냥 저냥 즐기는 취미도 아니었는데 미친 듯이 썼다. 매일. 하루에 6시간에서 8시간씩. 주말엔 거의 밤새며 많게는 5~6편도 썼다. 글 안 써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죽을 듯이 쓴 건 나를 살리고 싶어서였다는 걸 글을 쓰며 알아갔다.


처음 컴퓨터 앞에 앉았던 날이 기억난다. 두 아이를 오래 가정에서 돌보다 첫째를 학교로, 둘째를 어린이집으로 보내게 되었는데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내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 수. 아. 그래, 내 이름이 그거였지. 그런데 이름에 담긴 뜻이 무엇이었지. 이름이 생경했다.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좋아하던 음식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몇 년을 아이들과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차리다 보니 다 잊어버린 듯했다. 아니, 내 삶이 도둑맞은 듯했다. 그동안 가정에서 나는 나를 지우고 엄마와 아내라는 옷만을 입은 채 살아온 것이었다. 나를 지우지 않아도 될 일인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안 해보던 일을 해보고 싶었다. 도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나와 싸움이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새로

운 무언갈 하면 나의 존재를 감각할 수 있을 것이어서 안 해보던 일이 하고팠던 듯하다. 그런데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유튜브를 보면서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던 어느 날, 김미경 tv를 보게 되었다. 김미경 강사가 말했다. “전업주부들도 이 책은 꼭 읽으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 책은 《유튜브 레볼루션》이다. 두 아이가 없는 5시간 동안 내내 앉아서 책을 읽어나갔다. 주말을 포함해 꼬박 두 달을 읽고 또 읽고 필사했다.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300시간을 들여 완독이란 걸 하고 나서 책 한 권을 서머리 하고 독후감을 썼다.


이렇게 난독증이 극복되었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그리 쉽게 되는 게 아니었다. 내가 가진 난독증이 아주 지독한 거였을까. 나는 그다음 책을 완독하고 서머리하고 독후감을 쓰는데 200여 시간을 들여야 했다. 독후감까지 쓰는 책이 한 권 두 권 늘어가면서 4~5시간이면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독후감을 쓰다 보니 점점 나는 내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내 안에서 요동치는 마음들을 견디다가 글을 써야겠다고, 독후감이 아닌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매일 5시간씩 앉아서 활자를 읽던 시간은 자연스레 글 쓰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 쓴 글은 일기도 뭣도 아니었다. 5줄을 쓰는데 5시간을 넘겼다.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는데 쓰고 지우길 반복하다 보니 글을 완결 짓지 못했다. 완결될만한 한 줄만 더 있으면 될 거 같은데, 하는 마음에 두 아이를 재우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글쓰기를 어느 정도 혼자 연습한 뒤에 모임에 들어갔는데 무시받는 게 일이었다. 휴….


이 정도로 글을 못 쓰던 내가 이제는 “역시 글 쓰는 사람이라서 다르네요. 감사합니다.”, 하는 말을 듣곤 한다. 책을 쓰고 나니 주위에서 도움을 구한다. 아는 엄마들은 아이의 글이 어떠한지 보아 달라고 하고, 누군가는 대신 글을 써 달라고 한다. 좋은 곳에 쓰이는 글이라면 기꺼이 재능기부를 한다.


글을 봐주거나 써주면 감사의 표시로 선물을 받기도 하는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역시 글 쓰는 사람이라서 다르네요. 감사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가야 할 길도 멀지만, 빛의 조각들이 나의 정수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그 속에 작은 희망이 보인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면서 하염없이 길을 걷듯 글쓰기를 해왔는데 이제는 가야 할 길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포장되지 않은 길. 그 길에 있는 돌을 하나씩 들어 올리며 길을 내고 있다. 그러다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면서. 상처가 깊지 않으면 다시 일어나 계속 길을 만들어나간다.




이 이야기는 술주정과 같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취하면 늘 상 말씀하시던 레퍼토리 같은 이야기이다. 그땐 몰랐는데 이젠 안다. 왜 취하시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시는지. 그 마음을 이해한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 인생을 뒤흔든 이야기를.


독서와 글쓰기는 나라는 사람과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나의 모든 감각을 깨우고 퇴색된 기억을 살려낸 것도 독서와 글쓰기였다. 지금도 계속 바뀌고 있다. 대부분 좋은 쪽으로 달라지고 있는데 좋지 않은 것도 생겼다 없어졌다 다시 생겨나기도 한다.


한 가지 일을 3년간 매일 지속하다 보면 길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가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어느 순간 알게 된다. 나만의 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나의 몸, 마음, 영혼이 낸 길은 앞으로 6년 뒤 즈음이면 조금은 선명해지지 않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한 가지 일을 10년간 한 친구들은 어느 정도 저마다 원하는 지점에 가 있었다. 그러니 6년만 더 지금처럼만 매일 한 문장이라도 읽고 한 줄이라도 쓰길 염원한다. 작가가 되길 바란다면 독서로 활자를 쏟아붓고 글쓰기로 활자를 쏟아 내면 된다. 술주정 같은 레퍼토리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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