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출간된 글

고독한 사람은 고독을 모른다

겨울, 2월

by 이수아

고독과 외로움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고독과 외로움의 공통점은 ‘홀로 된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인데, 보통 그 쓸쓸함이 심해지면 고독하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낄 땐 혼자 있을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인 경우가 많다.


누구나 이러한 경험이 한 번 즈음은 있을 것이다. 어느 집단(무리)에 속해 있으면서도 외롭다고 느낀 경험. 분명히 혼자가 아닌데 외로운 이유는 차별, 비교, 소외와 같은 어떠한 요소로 인해서이다.

혼자일 때 외로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혼자인 상황이 낯설어서이다. 그 낯섦을 파고드는 고통으로 인해 쓸쓸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혼자일 때보다 함께인 적이 더 많았다는 것, 누군가와 함께일 때 외로움을 느끼는 상황보다 그렇지 않은 적이 더 많았다는 것. 혼자에 익숙해질수록 고통도 점점 줄어든다. 그러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을 맞이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고독’ 해지는 순간이다.



고독과 외로움의 다른 점의 기준은 고통의 유무이다. 즉, 혼자일 때 고통을 느끼면 외로운 것이고, 혼자일 때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고독한 것이다. 고독의 날이 겹겹이 쌓여가면 어느 순간부터 고독을 즐기게 된다. 이것은 혼자여도 괜찮고, 혼자서 무언갈 할 수 있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이고, 혼자서 어떠한 일에 집중 (혹은 몰입) 한다는 것이고, 혼자인 상황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독한 사람은 고독을 모른다.


누군가는 여러 번 들어서, 이제 그 얘기는 그만 좀 하라고, 지겹다고, 또 그 얘기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한 사람의 한 시절을 이루는 그 1년을 아마도 평생 이야기할 것만 같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로움을 마주하다가 고독해졌는지도 모른 채 고독한 사람이 되어갔기에.


2년 전의 어느 날,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사회불안증이라는 병명을 듣게 되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건 더 힘들고, 집 밖을 나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 겁나고, 낯선 장소에서는 길을 헤맬 만큼 두려움에 정신 차리는 게 어려웠다. 지금은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고 낯선 장소에도 잘 가는데,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종종 아는 길도 헤매곤 한다. 이럴 때면, 이대로 괜찮은 건가, 나는 아직 환자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철렁한다.



지금처럼 자유로워지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1년에 걸쳐 쓸쓸함을 느끼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언제인가부터 외로움을 모르게 되었다. 고독의 길로 접어든 시점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고독해졌는지. 고독을 모르게 한 가장 큰 이유는 책과 글쓰기가 있어서였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 한 해 동안 읽은 책 백 권이 넘는다. (한 권씩 읽을 때마다 한 편의 독후감을 써 놓아서 백 권 이상 읽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좋게 말하면 독서와 글쓰기에 몰입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매달렸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고독해졌는지도 모르고 독서와 글쓰기에 매달려 산 건, 죽어가는 나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는지 짐작한다. 나를 살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지. 구질구질하게 매달려서라도 살고 싶어서가 아니었을지.


외롭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연민이나 동정을 품게 되는데, 고독한 사람에게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당신의 고독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독한 사람은 고독을 모르기에 고독하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고독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쓸쓸한 마음의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이어서 고독한 게 아니라 외로운 것일지도 모른다.


고독한 사람은 고독을 모른다. 고독한 사람이 되었다는 걸 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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