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출간된 글

우리는 서로의 결점을 품고

겨울, 다시 봄

by 이수아

책을 읽고 글 쓴 지 2년이 되어갈 즈음이었다. 술 마시면 잠이 들곤 했는데 독특한 주사가 생겼다. 술에 취하면 책을 읽는 것이었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하염없이 읽다가 그대로 엎어져 잠이 들었다.


어느 날부터는 남편에게 읽은 문장에 대한 내 생각을 혀가 베베 꼬여서는 줄줄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성에 차지 않은 나머지 컴퓨터 앞에 앉아 무한대로 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와 중에 띄어쓰기, 맞춤법을 고쳐가면서. 사용한 단어가 문장에 적절한지 네이버 사전을 검색해 가며 A4용지로 5장이고 10장이고 무한으로 써댔다. 글을 쓰다가 날린 경험이 여러 번이어서 쓰면서 ‘파일- 저장하기’ 버튼을 수시로 누르는 습관을 들였다.


그때부터 난 한글파일을 열 때마다 저장 강박을 느끼곤 한다. 습관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술을 마셔도 여전히 글을 다듬고 저장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게 무슨 증상인지 모르겠으나 아마 직업병 같은 게 아닐지. 스스로 작가라고 여기면서도 수입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서 글쓰기를 직업으로 인정하지 못하기에 ‘직업병’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다음날 술이 깨고 전날 쓴 글을 읽을 때면 현타(‘현실 자각 타임’을 줄여 이르는 말로,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글에서도 알코올 냄새가 폴폴 날 정도였으니 손가락마저 취해버린 게 분명했다.

남편도 괜찮다고 하고 집에서 혼자 생쇼를 하는 것이니 별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라고 여겨지던 날이 찾아왔다. 책 읽고 내용을 이야기하다가 글을 쓰던 주사는 사람으로 향하게 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카톡이나 메일로 쓴 글을 전송하는 것이었다. 폭탄으로 활자 세례를 맞은 친구는 심각해졌다가 그냥 웃음이 터져버린다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실소가 아닐까 싶다.


술을 끊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한동안 잘 지키다가 매번 무너지고야 마는데, 이대로는 안 될 것이어서 함께 마시는 게 아니라면 술은 절대로 입에 대지 않는 방법을 강구했다. 대부분 술친구는 동거인이다. 남편과 술을 마시다 보니 우리는 이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어제 오랜만에 남편과 한잔할 이유가 생겼다. 자주 가던 와플 집 사장님께서 주점을 오픈한 것이었다.


인사차 한잔할 겸 남편과 호프집으로 갔다.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한잔, 두 잔 꼴깍꼴깍 마셔댔더니 어느새 취해버렸다. 필름이 끊길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당히 마신 것도 아닌 상태였다. 여기서 소주 한 병을 더 마셨더라면 기어서 집에 왔거나 기절하듯 잠들어 버렸을 텐데. 만취는 아니지만 취해버리면 배꼽이 간질거리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그 욕구는 스멀스멀 올라오다가 급기야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폭죽 터지듯 “빵!”.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사단이 나고야 만다.




어제는 친구가 아닌 지인에게 글을 무한대로 쏟아내었다. 아아, 조만간 나는 손절(노력해도 될 가능성이 낮은 상황일 경우 노력을 포기하고 자신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행위를 뜻하는 은어) 당할 운명에 놓였다. 만약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 준다면, 그는 부처님도 울고 가실 너그러움을 지닌 게 확실하다. 그는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어서 잃고 싶지 않다. 그저 은혜로운 행운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 주워 담을 수 없으니 다음에 그와 만날 땐 십자가라도 들고 갈 수밖에. 흑흑.


한두 번도 아닌 몹쓸 주사를 잘도 받아주는 친구와 브런치를 먹다가 이야기가 나왔다. 입으로 들어간 소시지가 코로 나올 뻔해서 (코로나 아니고 코로 나올 뻔 – 뭐야! 이 라임은. 역시 나는 랩을 좋아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친구에게 “미안해….”라고 사과했다. 그런데 친구가 이상한 답을 했다. 그런 나의 글도 멋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런 글은 멋있는 게 아니라 배설물이라고 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야야, 너 작가 맞다. 싸지르는 걸 그렇게 멋있게 하면 어떻게”하고 답해주었다.

20대 초반에 어느 남학생에게 폭탄 문자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가 최악이라고 여겨져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삭히느라 무척 힘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전화번호를 차단하는 것으로 화를 냈다. 주사를 이해해 주고 포용해 주는 이 친구, 혹시 성인군자일까?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조금은 짐작 가는 데가 하나 있다. 언젠가 친구 했던 감동적인 말이 있다. “나는 너 얼굴만 봐도 치유되는 것 같아. 속상했던 일이 다 풀려버려. 웃음이 나.” 이 친구는 진정으로 ‘나’라는 사람을 봐주는 듯하다. 나의 모든 것을 좋아하는 친구. 사회에서 만난 친구인데 소꿉장난하던 시절부터 알아 온 듯한 느낌이다.




사회에서 알게 된 사람들에게 단점을 보이면 안줏거리가 되거나 얕잡아 보이기 십상이다. 학창 시절 친구여도 못된 주사를 얼마나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아마 100명 중 99명은 손절할지도 모르겠다. 이 친구와 내가 알아 온 지 10년이 넘었다. 처음 우리는 어느 모임에서 만났다. 모임의 일원은 총 12명이었고 몇 년을 둘이서 따로 만난 적이 없다. 세월이 흘러도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결국 남는다는 말이 있다. 나의 어떠한 모습도 품어 줄 수 있는 사람과는 오래갈 수밖에 없다.


어제도 취해서 남편에게 랩 하듯 속사포로 입을 놀렸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컴퓨터 앞에 웬 꽃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세상에나 남편이 꽃을 선물한 것이었다. 꽃다발을 보자마자 내가 한 주사가 떠오르면서 그에게 묻고 싶었다. “호, 호, 호… 혹시, 당신 나 엿이나 물 같은 거 먹이려고 꽃을 준비한 건 아니지…?” 오후 3시가 넘어간다. 난 아직도 묻지 못했다. 남편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이 말은 마음 한구석에 묻어 놓는 게 신상에 좋을지도…. 지인에게는 입이 만개여도 할 말이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조차 못 했다. 하……. 십자가 목걸이부터 찾아야겠다.


나는 오늘부터 진짜 술 끊기로 했다. 공개적인 글을 썼으니 무조건 지켜야 한다. 금주, 지켜!


남편이 준 꽃, 물이나 엿 있을까봐 아직도 못 꺼내보고 있다는 슬픈 사실 ㅜㅜ


앗, 꽃은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 샀다고 하네요. 결혼기념일도 잊어버리고 있었네요. 정신차려야겠어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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