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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Mar 31. 2023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능력 중 하나는 한계 없음이다

인생은 바라는 대로 되는 법이 없다. 특히, 계획을 단단히 세우고 실천하는 와중에 틀어진 적이 여러 번이었다. 언제인가부터 인생은 흘러가는 방향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고 마음대로 믿었다. 그 뒤로는 내 앞에 놓인 일의 원인과 결과를 따지지 않고 그저 충실히 하게 되었다. 아, 공모전은 예외다. 나름 사력을 다했는데 탈락하면 결과를 따지지 않을 수가 없어서 1년에 한 번씩은 크게 운다.

두 번째 책 출간을 준비하던 날은 첫 책이 출간된 지 딱 6개월 되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천천히 진행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빨리 출간될 줄은 몰랐다.  2월 23일에 퇴고를 시작해 3월 6일에 탈고했다. 첫 번째 책을 함께 지어주신 편집장님과 두 번째 작업이어서 일이 빠르게 진행된 듯하다. 편집장님께서 이번엔 강도가 높을 거라고 했는데, 정말 굵고 짧게 끝났다.

퇴고시작부터 탈고까지 출판사와 주고받은 메일


첫 번째 책을 탈고할 때 6주가 걸렸는데, 이번엔 2주도 채 안 돼서 표지 시안과 보도자료가 나왔다. 첫 번째 책 예약판매 기간에 홍보용 가제본 1,800부를 만들어 돌리느라 하루에 한 시간 자며 2주를 보냈다. 두 번째 책은 짧고 굵게 퇴고하느라 하루에 한 시간 자며 지냈다. 가장 많이 잔 날이 2시간. 체력과 정신력을 다 털어 넣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게 있다. 번아웃증후군이나 무기력증 혹은 슬럼프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글을 쓰기 전에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모임에서 1년에 문집을 두 권 만들고 나서 처음으로 번아웃이 왔다. 모임의 리더가 번아웃이 올 때까지 왜 몸을 챙기지 않았느냐는 말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때는 내 능력 밖의 일을 어떻게든 해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몸살을 앓다가 한 달이 조금 넘게 의욕이 없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었다. 짜증이 났다가 화가 났다가 우울했다가 아무 감정이 없었다가 감정 기복이 말도 못 했다. 회복되고 나서 나는 조금 발전했다. 그전보다 더 오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고, 글 한 꼭지의 분량도 길어졌다. 이게 2020년도의 일이다.



2021년도에 한 번 더 번아웃을 겪었고, 작년에는 무기력증을 겪었다. 올해는 번아웃과 슬럼프의 중간이었던 듯하다. 굳이 따지면 슬럼프기간이 더 길었다. 이 세 가지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번아웃증후군은 2019년도에 WHO(세계보건기구)에서 발표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에 의하면 그전보다 증상 명과 기준이 명확해졌다.


WHO에서 말하는 번아웃은 직업과 관련된 탈진 혹은 소진 상태를 말한다. 첫째, 에너지 고갈 또는 탈진감. 둘째, 일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 또는 냉소주의. 셋째, 업무 효율 저하. 이 세 가지에 해당하면 번아웃으로 정의한다. 무기력증은 무언갈 할 수 있는 에너지는 남아 있는데 그 에너지를 허투루 쓰는 거라고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말했다. 슬럼프는 평소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3월 10일부터 지금까지 3일 정도 번아웃 증상이, 나머지는 슬럼프 증상이 있었다. 4번째라서 번아웃, 무기력증, 슬럼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나름의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그다음 몸, 마음, 정신이 원하는 대로 한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번아웃이 왔을 땐 자고 먹는 것도 싫어지기도 한다. 아로마 향을 피우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음악을 틀고 짜증이 난 채로 누워있으면 조금씩 나아진다.

미디어여행 3월 발행 글


3일은 거의 누워 지냈고, 다른 나날은 무언갈 하다가도 감정이 올라오면 그만두고 잠을 잤다. 그럼에도 세 권의 책을 읽고, 미디어여행에 한 편의 글을 발행하고, 수업에 제출할 과제로 세 꼭지의 글을 썼다. 매주 수업도 나가고 심리상담도 받고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마사지도 받았다. 4월에 있을 특강 연습도 매일 두 시간씩 하고 있다. 타이머 켜놓고. 번아웃보다는 슬럼프가 났다. 왜냐하면 그래도 무언갈 할 수 있으니까.

번아웃, 무기력증이 발생하는 원인은 여러 경우가 있지만, 일로 인해 서라면 그만큼 열심히 했다는 증거다. 그러니 자책할 필요는 없다. 2017년도에 번아웃이 온 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이 있었다고 한다. 마음 챙김 명상을 진행한 것인데, 44% 이상 효과를 보았다는 결과가 있다. 마음 챙김 명상 외에 소확행을 하거나 혼자가 아닌 상황(예, 반려동물)이 번아웃에 도움 된다고 한다.


인문학 글 피드백, 에세이에서 인문학으로 나아가는 중


나는 지난 토요일에 수영하고 하루에 천 보씩 걸었다. 어제는 한 번에 오천 보를 걸었다. 매일 만보를 걸었는데 점점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4년째 번아웃이나 무기력증 혹은 슬럼프를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한계를 넘어섰을 때 번아웃, 무기력증, 슬럼프가 찾아온다는 것. 이걸 이겨내고 나면 내 한계는 다시 재설정된다는 것. 해를 거듭할수록 이러한 증상을 겪는 기간이 짧아진다는 것이다.

다른 작가님들은 능숙하게 글을 쓰고 출간과정을 거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그럴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그래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 컨디션이 거의 회복되었다. 만 3년을 하루에 6시간~8시간 글쓰기를 지켜왔는데, 앞으로는 매일 3시간 글을 쓰고 나머지 시간엔 공부할 생각이다. 평소 접해보지 못한 책을 읽고, 정리를 잘해서 자료를 차곡차곡 모으려고 한다. 작년하고 올해 내 안에 쌓인 걸 글로 내보냈으니 옹달샘을 다시 채워야지. 샘물이 마르면 안 되니까.


수영으로 몸과 마음 단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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