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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Sep 24. 2022

1. 만 신

이수아 단편소설

                                『 만 신 』     

 

                                                                                                                 이수아 단편소설     


 1. 저 멀리 길고 큰 소나무가 늘어서 있다. 소나무 사이로 붉은 무엇인가가 숨바꼭질하듯 보였다 사라졌다. 호기심이 발동된 남편은 소나무 숲으로 가보자고 했다. 나는 얼떨결에 남편을 따라 종종걸음을 했다. 남편의 뒤를 따라가면서 광고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겠거니 했다. 남편은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남편을 보고 있자니 잃어버린 동심을 잠시 되찾은 것 같았다.   

   

소나무가 늘어선 길과 가까워질수록 그것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하늘하늘한 붉은 천이었다. 소나무 사이마다 매달려 있는 붉은 천은 마치 맑은 하늘에 수채화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 그 천은 내 얼굴을 가릴 만큼 늘어져 있다. 선명하고 고운 것이 꼭 한복을 지을 때 사용하는 옷감 같다. 붉은 천은 시시때때로 다른 모습이었다. 햇살이 닿으면 이쪽에서 주황빛을 냈고, 고개를 돌려 저쪽에서 바라보면 자줏빛을 띠었다.      


구름이 머문 곳은 그늘이 져 본래 색보다 낮은 채도의 붉은색을 띠었다. 남편은 허리부터 발끝까지 다 내놓고 상반신만 붉은 천 뒤에 숨겼다.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라며 개구쟁이처럼 장난을 쳤다. 그럼 나는 뻔히 다 아는데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떼고는 빈천을 들추어 보며 “못 찼겠다 꾀꼬리”를 외쳤다. 이번엔 이쪽일까? 아니면 저쪽일까? 여기도 아니면 아주 다른 곳에 숨었으려나? 남편을 찾고 있는데 하늘에서 흰 말이 불쑥 나타났다. 작년에 남편과 같이 갔던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동물원이었나?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봤던가? 아니면 영화에서 봤을지도 몰라. 백마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익숙했다.      


 백마는 이마와 콧등, 가슴에 붉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붉은 띠에는 깃털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장식되어 있고, 누구의 것인지 몰라도 주인이 있는 말처럼 등에는 은색의 말안장이 얹혀 있었다. 어느 결에 코앞까지 달려온 백마는 엉덩이를 보이며 돌아서더니 발길질을 해댔다. 뒷발에 차여 튕겨 나간 나는 살려달라는 말 한마디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어, 어, 어” 거리다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던 찰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하늘로 솟았다. 눈 깜짝할 사이 나는 백마 등허리에 올라타 있었다.      


백마는 앞발을 쳐들고 번개 치듯 우렁차게 울었다. 백마가 우는 바람에 말 입에 물려 있던 칼이 공중 부양했다. 칼은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아 내 손 안으로 쏙 들어왔다. 너무 신기한 나머지 귀신의 장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백마는 하늘을 향해 달렸다. 얼마나 빠른지 에버랜드에서 탔던 T-익스프레스가 곤두박질칠 때와는 비교되지 않았다. 백마는 구름을 뚫고 바람을 가르며 내달렸고, 나는 말안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한 손에는 칼을 든 채 다른 한 손으로 말의 고삐를 꽉 틀어쥐었다.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간신히 실눈을 떴을 때였다. 누가 내 몸을 흔들어 댔고 나는 완전히 눈을 떴다.     


 “여보, 왜 그래?”

 “하……”

 “악몽이라도 꾼 거야?”

 “꿈에서 흰색 말을 봤어. 백마였어.”

 “혹시 태몽 아니야?”


>> 2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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