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비밀

by 최원돈

말할 수 없는 비밀

최원돈


온종일 찌푸린 하늘에서 오후가 되자 눈이 내린다. 금세 하얀 눈이 세상을 뒤덮는다. 사람들은 패딩 외투 모자를 덮어쓰고 눈길을 걷는다. 나도 모자를 눌러쓰고 눈길을 걸었다.


“우리가 만난 건 기적이야.”

“네가 어디 있던 내가 거기에 있을게”


영화를 보면서 메아리처럼 귓전에 맴도는 두 연인의 대사이다.

‘화양연화’ 같은 풋풋한 젊은 날 캠퍼스의 사랑 이야기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두 사람을 떼어 놓았다. 만날 수 없기에 더욱 애틋하고 안타깝다.

피아니스트로 촉망받던 독일 유학생 유진은 심신에 병이 들어 교환학생으로 고국으로 돌아온다. 음악대학 음악연습실 피아노 아래에서 정아를 만난다. 아름다운 피아노 음률이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둘은 첫눈에 반해 서로에게 빠지게 된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순탄할 수 없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서로 그리워하게 한다.


둘이 함께 함께 찾았던 CD 가게에서 서로가 고른 음반은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였다. 그녀는 “어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데”라며 여기서 음악을 들으면 갑자기 고요해지며 둥둥 떠다닌다고 했다.


“매일 그대와 아침 햇살 받으며

메일 그대와 눈을 뜨고 파

매일 그대와 도란도란 둘이

매일 그대와 얘기하고파


새벽 비 내리는 거리도

저녁노을 불타는 하늘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걸

같이 나누고파”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사운드트랙은 아름다운 캠퍼스의 가을 풍경의 ‘스크린 너머로 여운을 이어가는 음악으로 가득’하다. 이 영화의 ‘서사와 감정을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과 풍부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섬세하게’ 풀어낸다. 특히, 라흐마니노프와 리스트의 곡을 두 대의 피아노 배틀 연주는 영화 속 긴장감과 박진감을 극대화하며, 관객들에게 압도적인 전율을 선사했다.


음악실 피아노 옆에는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그림이 걸려 있다. 영화 속 음악 수업에서 쇼팽의 음악 세계에 관한 질문에서 주인공 유진은 쇼팽은 조르주 상드가 있었기에 수많은 피아노곡을 작곡했다고 말했다. 그림 속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그림이 호기심을 끈다.

쇼팽과 조르주 상드는 마요르카섬에서 2년 동안 살았다. 결핵을 앓은 쇼팽은 이 섬으로 요양차 왔다. 쇼팽은 이곳 ‘바람의 집’에서 그 유명한 ‘빗방울 전주곡’을 작곡했다. 쇼팽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6년 후 조르주 상드는 회상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쇼핑을 하기 위해 아들 모리스와 함께 외출했다. 그런데 비가 내리더니 점점 심해졌다. 게다가 갑자기 불어난 급류로 길도 막혔다. 그래서 우리는 길을 돌아서 평소보다 몇 시간이나 늦게 집에 도착했다. 집 지붕에서는 장대 같은 비가 기왓장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는 슬픈 표정으로 피아노에 앉아서 빗방울 소리를 피아노로 치고 있었다. 그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말했다. ‘나는 이 비에 당신들이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소.’ 빗방울은 그의 가슴속에서 눈물로 변했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사랑은 타이밍‘이라 했다. 유진은 정아를 찾아 곧 허물어질 음악실로 달려갔다. 바깥에는 공사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유진은 정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연주했던 음률을 치기 시작했다. 정아는 절대 그 음악을 치면 안 된다고 한, 그 음률이 음악실에 울려 퍼진다. 이어서 육중한 공사 차량이 건물을 부수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더미가 피아노 위에 떨어진다. 유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들린 사람처럼 그 곡을 연주했다. 유진의 머리 위로 콘크리트 더미가 쏟아진다.


두 사람은 영혼이 되어 서로 다정한 눈길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피아노를 연주한다. 음악연습실 가득히 아침 햇살이 비쳐 든다.


“우리가 만난 건 기적이야.”

“네가 어디 있던 내가 거기에 있을게”


정아는 20년 전 이 세상을 떠났으며, 유진은 죽어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이 때문이었다.


우리는 ’ 젊은 날의 초상(肖像)‘을 만끽하고 영화관을 나선다.

’ 사랑이란 무엇인가 ‘

’ 매일 그대와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 ‘


까만 밤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다.

아내는 하얀 눈길을 걸으며 나의 팔짱을 끼었다.

“나는 다음 생에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202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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