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촌별곡

by 최원돈

강촌별곡

최원돈


“뽀르르 뾰 뾰 뽀르르”“지지배배 지지배배”

강촌 집 빨간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새들의 합창 소리가 나를 반긴다. 밭두렁 너머엔 하얀 산벚꽃이 흐드러졌다. 소나무 사이로는 진달래가 분홍 꽃잎을 나풀댄다. 조팝나무가 하얀 눈꽃처럼 소복하다. 산수유는 노란 꽃잎을 털어내고 연둣빛 초록으로 바뀌어 간다. 자목련 자줏빛 꽃봉오리가 오뚝하다. 산벚나무 사이로는 새들이 바쁘게 오간다.


주말에 비 예보가 있다는 소식에, 목요일 늦은 오후 서둘러 강촌으로 왔다. 이번 주엔 밭을 갈아야 한다. 비라도 오면, 질어진 밭에 트랙터가 들어설 수 없다. 이른 봄부터 대문 앞에 쌓아둔 계분도 밭에 뿌려야 한다. 올해는 양도 많아, 나르기도 벅차다.

인석이 형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아침에 계분부터 뿌려 놓아, 비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

그 말에 내 마음이 바빠진다.


아내에겐 카톡만 남기고 혼자 왔다. 어젯밤, 아내는 임플란트 수술을 했다. 나는 문우 모임 뒤풀이에서 늦게 들어가,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강촌 갑니다. 토요일에 비가 온다고 해서요.

어젯밤 늦게 들어가 미안해요. 약 잘 챙겨 먹고, 힘내요.”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 저희 오늘 베트남 떠나요.”

“그래, 오늘이 그날이구나.”

“소은이 바꿔 줄게요.”

“소은이 시 잘 읽었다. 참 잘 썼더라.

여행 가서도 많이 써 보내렴.”

“네, 할아버지.”

며느리의 목소리도 들린다.

“아버님, 지금 어디세요?”

“강촌에 왔어....”

“어머님도 같이 계세요? 전화를 안 받으셔서요.”

“혼자 왔어. 비 오기 전에 밭을 갈아야 해서....”

“그러시군요. 저희 여행 잘 다녀올게요.”


저녁을 먹고 나니 큰딸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아버지,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야. 주말에 비가 온다 해서 혼자 왔어....”

“엄마는 괜찮으시고요.”

“그럼, 아무 일 없어.”


말 못 할 속내가 있다. 지난번에도 큰딸에게 털어놨다가, 걱정만 안겼다. 그때 우연히 아들이 집에 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내의 속상한 사연을 듣고 애써 기분을 풀어주려 했다. 그런 일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이날 밤, 나는 <강촌별곡>을 썼다. 지금 내 마음을 솔직히 써보고 싶다. 어쩌면 차천로의 <강촌별곡>이나의 '강촌별곡' 일지도 모른다.

차천로는 벼슬을 마친 뒤, 익산 웅포에 은거하며 <강촌별곡>을 남겼다. 그의 시는 뒤늦게 일본인 마에마 교사쿠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차천로의 강촌별곡은나의 <강촌별곡>이 된다.


이 몸이 쓸데없어

아내 속을 태우고

강촌 집 홀로 와서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쓰네

산벚꽃 꽃비 되어

하늘강 위로 흘러가니

내 눈시울 붉히누나

나는 왜 꽃비를 보면

눈물이 나는 걸까

공연히 대문 밖을

내다보니

"지지배배, 지지배배"

곤줄박이 울고 가네


구름방 뒤에 쌓아둔 계분을 하나둘 옮긴다. 올해는 힘에 부쳐 두 포씩밖에 나를 수 없다. 해는 어느새 중천을 넘어섰다.


이웃 형수님이 안부를 묻는다.

“혼자 왔어요.”

“네, 비가 온다고 해서요.”

“신원이 할머니 같은 사람 없어요.”

“그렇게 착한 사람, 세상에 없어요.”

“잘해 주셔야 해요.”

이 말이, 마음속 깊이 스며든다.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그저 웃고만 있다.


하루 종일 산속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뽀르르 뾰 뾰 뽀르르”"지지배배 지지배배"

새소리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산벚꽃이 꽃비 되어 흩날린다.‘왜, 나는 꽃비를 보면 눈물이 날까.’ 오지 않는 사람을 향해 자꾸만 대문 밖을 바라본다.


인석이 형이 트랙터를 몰고 왔다.바구니에 장독 세 개를 싣고.

“사모님이 좋아하실지 몰라. 깨진 독인데…”

“괜찮아요. 소금단지로 쓰면 돼요.”


형은 계분 포대를 뜯어, 골고루 밭에 뿌려준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눈빛이 짠하다. 흙을 갈고, 고랑을 내며

산벚꽃 꽃비는 끊임없이 날린다.


밭을 다 갈고 돌아 나오며, 내가 쌓아놓은 소망탑이 무너졌다. 그 모양이 꼭, 내 모습 같다. 다시 돌을 하나하나 모아 쌓는다.

탑 꼭대기엔 부부상 화산석을 올린다.

부부가 포옹하는 형상이다.이것이 나의 소망탑이다.


나는 얼마 전, 아내의 질책을 받았다. 또 실망을 안기고 말았다. 함께 밭일하러 오기로 했던 주말,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렇게 혼자, <강촌별곡>을 쓰고 있다.

나의 소망은 아내로부터 신뢰를 되찾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내를 기다린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 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은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흐르네”


문우의 뒤풀이에서 불렀던 이 노래. 말이 씨가 된 걸까. 나는 정말, 강촌에서 혼자 살아야 하는 걸까.

(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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