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문학관을 찾아서

by 최원돈


박경리 문학관을 찾아서

최원돈



집을 나서는데 봄비가 내린다.

소리 없이 내리는 촉촉한 봄비이다.

사당역 가로수 길섶에는 하얀 이팝나무가 봄비 속에 꽃잎을 떨구고 있다.

오늘은 수필작가회 봄 문학기행으로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을 찾는다. 나는 일찌감치 출발 장소로 나왔다. 벌써 나보다 먼저 나온 문우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버스 가득 문우들은 서로 안부를 물으며 정담을 나누느라 소란스럽다. 수필 극 ‘R 시인’인 송 선생과 함께 자리했다.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봄비에 젖어든다. 봄비는 초여름 산자락을 어루만지고 있다. 이른 아침이 저녁놀처럼 어둑하다, 오가는 차들은 하나같이 전조등을 켜고 달린다. 창문을 스치는 빗방울에는 아직 봄의 잔향이 남아 있고, 그 속에서 나는 오래된 책갈피 하나를 꺼내듯 박경리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토지』의 첫 문장을 만났을 때의 떨림, 그 서사 속에서 헤매던 내 젊은 날의 초상이 겹쳤다. 그 시절 내 삶은 늘 무겁고 복잡했지만, 그녀의 문장은 한 줄기 강물처럼 고요히 흘러 내 마음을 닦아주었다. 박경리 선생을 만나고 싶었다. 책 속의 인물이 아닌, 원주 작은 언덕 위에 조용히 자리한 문학관의 풍경 속에서. 작가의 숨결이 남아 있을 그 길 위를 걷기 위해, 한국수필 작가회 버스는 봄비 속에 원주로 향했다.

"여행은 비가 와도 즐거워요.” 사무국장의 인사에 이어 "우리 작가회보다 친숙한 단체는 없습니다." 회장님의 인사는 우리를 곧 친숙하게 만들었다.


'박경리, 그 이름은 내 마음속 깊이 간직한 지 오래된 사진첩의 그리움이다.'


박경리 문학의 집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전시실 안에는 선생의 흑백사진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깊고 단단한 눈빛이었다. 마치 이 세상의 고통과 불안을 다 삼킨 듯한, 그러나 끝내 무너지지 않은 사람의 눈빛.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녀가 남긴 육필 원고를 바라보며, 그 잉크 자국 하나하나가 시간을 거슬러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을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 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그녀가 남긴 말 중 하나였다. 그 말이 전시관 벽에 걸려 있다. 나는 그 문장을 바라보다 문득 떠올렸다. ‘얼마나 많은 날을, 어떤 절망을, 어떤 사랑을 지나야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토지』의 수많은 인물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최서희, 길상, 김 환… 그들은 단지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박경리 자신의 분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고통을 기록함으로써 구원받았고, 독자인 우리는 그 기록을 읽으며 치유되었다.


박경리 문학의 집 한쪽, 그녀가 생전에 글을 썼다는 만년필이 보인다. 잉크 냄새가 날 것 같은 오래된 만년필, 그리고 까만 안경집을 보니 그녀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곳에 서서 눈을 감으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고요해진다.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고, 단어들이 마음속에 조용히 가라앉는다. 마치 이 공간이, 글을 쓰는 이들에게 건네는 묵묵한 응원처럼 느껴진다. 선생의 글 쓰던 사진이 처연하게 다가온다.


더 이상 볼 것이 없는 전시관을 서둘러 나왔다. 하얀 쪽동백이 봄비에 함초롬히 서 있다. 글 뜨락에서 함께 공부하는 문우와 함께 박경리 선생이 살았던 ‘옛날의 그 집’으로 갔다. 사립문을 들어서니 시판(詩板)이 비에 젖어 있다.


“빈 창고같이 횡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옛집 앞마당 너럭바위에 앉아서 쉬고 있는 선생의 흉상이 우리를 맞아준다, 옆에는 책 한 권과 호밋자루 하나가 놓여있고 맞은편 바위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선생을 쳐다보고 있다. 봄비에 젖은 선생이 금방이라도 일어서서 달려올 것만 같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 붙이고 살았다”


선생의 옛집은 그 어떤 조형물보다, 담장 너머로 흐드러진 나무들과 담담한 벽돌 건물이 오히려 더 작가를 닮아 보였다. 하지만 옛집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전화로 물었더니 내부 관람은 사전 예약하여 문화해설사 입회하에 할 수 있다고 한다. 수필작가회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창문 틈으로 방안을 살펴보니 노란 장판 위에 빨간 고추가 소복이 쌓여 있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선생이 만들었다는 연못을 지나 언덕 위 “홍이 동산”은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홍이”에서 따온 장소이다. 평사리 뒷동산을 의미한다. 언덕길 아래로 “용두레 벌”은 평사리에서 신작로 철길을 거쳐 간도 용정으로 떠나가던 여정을 그린 곳이다. 신작로 전봇대는 푸른 숲에 가려 봄비에 젖어 있다. 해란강 일송정, 용두레 우물을 지나 문학의 집 기념품 관에서 함께한 문우가 선생의 수필집 두 권을 사서 한 권을 건네준다,


문학관을 나서며 나는 마지막으로 뒤를 한 번 더 돌아보았다. 고요히 자리한 박경리의 흔적들이 봄비에 실려 내 어깨에 닿는 듯했다. 이곳은 단순한 기념관이 아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 공간에서 나는 한 사람의 문학, 아니 한 사람의 생을 온전히 만났다.


일정이 모두 끝나고 돌아오는 길, 원주의 산자락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봄비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버스 속에서 선생의 수필집 『약이 되는 세월』을 꺼냈다. 선생이 겪은 참척의 아픔이 잘 나타난 글 <세월>을 읽는다. 이 글은 아들을 떠나보낸 지 6년의 세월을 지난 후 쓴 글이다. 세월이 흘러도 상처는 아물지 않고 더 진하고 많은 피가 쏟아진다고 했다. 아홉 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었다.


"가끔 아이가 살아서 돌아왔다고 좋아서 울다가 깨어보면 꿈일 때가 있다. 이런 날에는 하루 종일 도사리고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집 식구들은 말 없는 내 심중은 알 턱이 없고, 쌀이야, 연탄이야 하고 걱정만 늘어진다. 도시 산다는 일이 징그럽게만 여겨진다."


“부모를 잃은 아픔은 천붕(天崩)이라 하고, 아들을 앓은 아픔은 참척(慘慽)이라 한다.” 참척의 고통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이 고통을 견디기 위하여 선생은 26년이라는 세월을 걸쳐 『토지』룰 완간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박경리 선생은 비로소 이렇게 <옛날의 그 집>을 끝맺었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토지』의 첫 만남은 내 젊은 날의 초상이기도 하다. 수많은 인연의 만남으로 밤을 지새우던 나날들이 차창 밖 어둠 속으로 어른거린다. 그 질박한 문장 속 애틋한 사연들이 어렴풋이 떠 오른다. 물안개 멀리서 박경리 선생이 손짓한다. 그 시절 토지 속 인연을 통해 얼마나 그렸던 모습인가.


나는 수필작가회 문우들과 함께 옛 추억 속의 박경리 선생을 만났다.

오늘 만난 선생의 모습은 내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선생과 나의 어머니는 1926년생 범띠이다. 나는 어머니를 내 나이 스물여섯에 떠나보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 군대 생활을 하던 나는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는 아내의 두 손을 꼭 잡고 하룻밤을 보내었다.

“동기간에 우애 있게 지내어라.”

이 말은 어머니의 유언이 되었다. 아내와 결혼식을 올리던 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나는 오늘 봄비를 맞으며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은 아내의 모습이었다. (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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