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다
– 북경기행 (1)
최원돈
석각박물관을 나서며 '신도 석각' 쌍기둥을 뒤로했다. 별다른 것 없는 기념품 가게를 무심히 지나치는데 문득 눈에 띄는 헌책 한 권이 책더미 속에 숨어 있다. 순간, 아까 전각 안에서 마주쳤던 바로 그 <正氣歌>였다. 손에 쥐고 한참을 들여다보다 일행을 놓쳐버린 것을 알았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행히 덕산이 곁에 있어 마음은 그리 불안하지 않았다. 둘이 천천히 이곳저곳을 살피며 사진을 찍고 기다려 보았지만, 끝내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먼저 나간 것일까. 오탑사 앞으로 나가 보았지만, 그곳에는 일행들의 흔적은 없다. 매표소 앞까지, 다시 핑크빛 덩굴장미 울타리를 지나 돌다리 건너까지 걸었다. 운하가 흐르고 그 너머로는 동물원으로 이어지는 길이 펼쳐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가 내렸던 장소까지 가 보았지만, 그곳 역시 아무도 없었다. 버스도, 사람도, 아무도. 이럴 때 핸드폰 로밍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 다만 혼자가 아니라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다시 박물관 입구로 돌아가는 길, 마침 전화가 걸려 왔다. 이제 막 일행이 나온다는 소식이었다. 이런 경험은 가르침이 된다. 다음부터는 반드시 만남의 장소를 미리 정해 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밤이 깊었다. 낯선 도시의 새벽 공기 속에서 정기가를 펼친다. 그 글귀 하나하나에 깃든 의로움과 절개가 가슴을 울린다.
문천상(文天祥, 1236~1283). 남송의 충신, 그는 나라가 위태로울 때 가산을 정리해 의병을 모았고, 결국 원나라 쿠빌라이의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문천상은 고백한다. “나라가 위급한데, 모두가 나서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통탄할 일이겠는가. 비록 이 무모한 싸움에서 죽더라도 나로 인해 충신과 의사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한이 없을 것이다.”
그는 포로가 되어 원나라 대도(지금의 베이징) 감옥에서 5년을 보내며 ‘정기가’를 남겼다. 그 글에는 비굴함 없이 충절을 지키고자 하는 대장부의 강직함이 절절히 담겨 있다. 그의 시는 지금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제갈량의 출사표에 비견되기도 한다.
“天地有正氣 하늘과 땅에는 바른 기운이 있어”
쿠빌라이는 그의 충절에 감탄하여 몇 차례 마음을 돌려보려 했지만, 문천상은 단호했다. “나라가 비록 멸망한다 해도 신하는 끝까지 도리를 다해야 하오.”
결국 그는 참형당하고 만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남과 북을 막론하고 모두가 눈물지었다. 시신을 수습하러 온 그의 부인은 “그 얼굴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진정한 대장부는 죽음조차도 위엄을 잃지 않았다.
진각사 혹은 오탑사, 이곳에는 600년 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고목은 말이 없지만, 오 탑과 함께 무언의 세월을 살며 무엇을 지키고자 했을까.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진각사와 문 승상의 사당을 기록했다. 황제조차도 높이 모신 티베트 승려들을 보고, 문천상의 충절 앞에서 고개를 숙였던 조선의 유학자에게는 낯선 충격이었다. 연암은 문 승상의 사당을 참배하고 나오며 말했다.
“나는 사당에 두 번 절하고 나오며 한숨을 쉬고, 또 탄식했다.”
길을 잃었던 나는 문천상을 만났다. 그리고 그 앞에서 길을 찾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진정한 대장부란 어떤 사람인가.’
자신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한 문천상은 호연지기를 펼칠 줄 아는 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천 년이 지나도 사람들 마음속에서 결코 잊히지 않는 진정한 대장부였다.
나는 창밖을 열고 이국의 밤하늘을 바라 본다. 멀리서 샛별이 빛나는 하늘에서 한 줄기 여명이 비쳐온다. (2025.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