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by 최원돈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북경 기행 (5)

최원돈


나는 이번 북경 기행을 통해 몇 편의 수필을 썼다. 낯선 도시에서 마주한 사람들, 우연처럼 찾아온 잊을 수 없는 순간들, 이름 모를 식당에서 먹은 따끈한 음식들까지. 그 하나하나가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고, 나는 그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글로 옮겼다.

하지만 아직 쓰지 못한 장면들이 있다. 천안문 광장을 지나 국가역사박물원에 들어섰을 때의 그 소란스러운 광경, 자금성의 웅장한 적막, 치바이스의 생가에 깃든 묵빛 향기, 치엔먼 후퉁 거리에서 마주친 오래된 시간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얻은 뜻밖의 수확, 손 안의 조용한 혁명이 된 서예의 앱 이야기까지. 이 모든 것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묻게 된다.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여행은 ‘미지의 영역’으로 내딛는 것이 아닐까. 어떤 사람은 막막하고 높은 산에 서 있는 자신을 우주에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미지의 냄새를 맡은 것과 같은 것이다. 아마 우리가 느낀 것은 같은 것일 것이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자신'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의 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여행을 떠나는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 서게 되는 것과 같다.


'국가역사박물관'으로 가는 길.

천안문 광장을 지나 국가역사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또 다른 국경을 넘는 듯했다. 입구까지 가는 동안 몇 번이고 여권을 꺼내야 했고, 가방은 철저한 검색을 거쳐야 했다. 인파 속에서 줄을 서고, 따가운 햇살 아래 한 걸음씩 전진하며 생각했다. 이토록 엄중한 통제 속에서 과연 얻는 것은 무엇일까.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을 때,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몇 세기에 걸친 압도적인 시간의 무게였다. 차분히 정리된 유물들 사이로, 지나간 시대들이 숨 쉬고 있었다. 나는 오래된 토기와 청동기, 비단과 옥장식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그중에서도 나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문자였다. 거북 등껍질에 새겨진 갑골문에서부터 점차 형태를 갖추어가는 한자의 흐름은, 문명의 태동을 직접 마주하는 듯한 전율을 주었다. 청동으로 만든 그릇 바닥에 새겨진 아름다운 금문들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하다. 향로를 닮은 주전자 모양의 놋그릇에도, 놋쇠로 만든 당나귀 등에도 새겨진 문양들에 새겨진 이야기들이 금방이라도 들려오는 듯하다. 이 것들이 2000년 전 춘추전국시대의 유물이라니 실로 놀랍다.

문득, 익숙한 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발해. 고구려의 후예들이 세웠던 나라. 그들의 삶과 문화가 중국 땅의 역사 한편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잊히지 않으려는 듯, 그러나 조심스럽게 자리한 그 흔적들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는 한참을 그 앞에 멈춰 서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문제였다. 두 시간이라는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나는 자꾸 시계를 바라봐야 했다. 결국 마지막 명·청대의 역사관은 제대로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발길을 돌리는 순간, 등 뒤로 커다란 청나라 황제의 초상이 흐릿이 다가온다. 아직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뜻밖의 선물, ‘以觀書法(이관서법)’.

이 번 북경기행에서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일이었다. 여행 내내 우리 일행을 인도해 준, 지석 안재성 선생을 통해, 우리는 '이관서법’이라는 서예 전용 앱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내 스마트폰을 직접 받아 들고 일일이 설치해 주었고, 사용법까지 정성스레 알려주었다.

이 앱에는 고진문보는 물론 고전 문장, 한시, 명언 등 서예의 소재로 삼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또한 이 앱은 놀랍게도 여러 서체로 문장을 자동 변환해 주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동안 서예 작품 하나를 준비하려면 문장을 고르고, 다시 서법 자전을 펼쳐가며 필체를 연구해야 했지만, 이제는 이 앱 하나로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형식의 작품 구상을 마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술이 전통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되려 그 깊이를 더해주는 방식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이날 저녁, 호텔 방 안에서 조용히 앱을 켜고 고전 한 구절을 골라 여러 필체로 살펴보았다. 손끝에 머무는 글씨들 사이에서, 나는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치바이스 생가와 후퉁에서.

마지막 날, 우리는 중국 근현대 서화의 거장 치바이스의 생가를 찾았다. 단정한 벽과 낮은 기와, 그리고 묵 향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한 그 집은 마치 시간의 섬 같았다.

생가 마당에는 선생의 전신 동상이 우리를 맞았다. 지팡이를 짚고 서있는 모습이 낯 설지가 않다. 분홍 장미 덤불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서니 서화 책상 위에는 생전에 사용하던 문방 구들이 놓여 있다. 금방이라도 선생이 들어설 것만 같다. 옆 방 침실 나무 침대 위에는 보료가 깔려 있다. 검소한 가구들을 보니 검박한 선생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 여운을 안고 찾아간 치엔먼 후퉁 거리. 그곳은 북경의 오래된 심장을 보는 것 같았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벽에 기댄 노인, 국수를 삶는 소리, 뛰노는 아이들. 나는 그곳에서 오히려 내 어린 시절 동네 뒷골목을 떠올렸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감정을 만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가 아니던가.


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번 여행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본 것은 풍경이었지만, 진정으로 마주한 것은 내 안의 나였다는 것을.

낯선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는 나를 비추는 그림자를 보았고, 말없이 지나가는 역사 앞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또 누군가의 친절을 통해 전혀 새로운 도구를 얻고, 그로 인해 나의 일상이 변화될 가능성을 발견했다.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여행지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깨닫는다. 자신이 참여하지 않은 일상의 흐름이 거기에는 있기 때문이다. 그때 흘러가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고 생각하며,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 우리는 이러한 의문을 품게 된다. 알고 보면 이것도 확실하지 않은 여행지에서 잡은 환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다시 기억 속에서 여행을 한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잊고 지낸 나 자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길을 떠나고, 돌아와서는 기억 속 여행을 되새기며 다시 떠날 날을 꿈꾸게 된다. (202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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