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의 멋과 맛

by 최원돈

파격의 멋과 맛

최원돈


파격(破格)은 일탈이다. 틀을 깨고 경계를 넘어서는 행위,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다. 일탈은 때로 본래의 길을 찾기 위한 여정이 되기도 한다. 파격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중심과 확신을 지닌 자만이 펼칠 수 있는 자유의 기개이다.


이번 북경 기행은 그 파격의 진수와 만나는 여정이었다.


기행의 첫날, 우리는 북경 석각 예술박물관을 찾았다. 진각사, 혹은 오탑사로 불리는 이 사찰은 명나라 영락제 시대인 1413년에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이곳에는 중국의 다양한 시대의 석각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었다. 대리석 비석들은 세월의 풍화를 머금은 채 마당에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낡고 바랜 글자들은 마치 시간의 주름처럼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것은 <幽州 書佐 秦君 神道 石刻 (유주 서좌 진군 신도 석각)>이라 불리는 쌍기둥 석각이었다. 높이는 사람 키를 훨씬 뛰어넘는 우뚝한 비석에는 커다란 한자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를 보고 함께한 초민 선생은 감탄했다.


"이 석각엔 두 점의 예서가 새겨져 있습니다. ‘장천비(예서 법첩)’의 필의가 느껴지는데. 특히 오른쪽 글씨가 더욱 생생합니다. 오늘 이 작품 하나만 보는 것으로도 이 박물관을 찾은 보람이 충분할 것입니다."


―君止神道(군지신도) 書佐秦漢(서좌진한) 故幽州(고유주) —


문장의 뜻은 군주를 칭송하는 내용이다. 서기 105년, 동한 시대에 이토록 웅혼한 글씨가 존재했다니 놀랍다. 힘이 있고 장중한 필체는 기존의 여느 서체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중에도 書(서) 秦(진) 漢(한) 자가 유독 크고 강하게 다가왔다. 특히 君(군) 자가 문장의 앞에 놓인 것 역시 의도적인 구성임이 분명하다. 그 미학적 구조와 의미는 심오한 울림을 지니고 있었다.


파격의 멋이란 무엇인가. 이는 눈으로 보는 놀라움과 신선함으로 그 안에 숨겨진 독창성과 그 의미는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미학적 충격이었다. 기존의 틀을 깨면서도 품격과 혁신을 지닌 대담한 파격의 아름다움이다. 이것이 바로 파격의 ‘멋’이 아닐까.


이날 저녁, 또 다른 파격이 펼쳐졌다. 북경의 유명한 서화 감정가인 ‘원차이’가 만찬에 합석했다. 그는 ‘西花錦(서화금)’이라는 고급 고량주를 가져왔다. 이 술은 53도의 강한 도수지만 그 풍미는 깊고 부드러웠다.

작은 잔에 술을 채워 건배하며 호쾌한 대작 속에서 맹자가 말한 ‘浩然之氣(호연지기)’가 떠올랐다. 이는 실로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이것은 계산이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자유와 기백이었다.


파격은 경계를 넘되 중심은 흐트러지지 않는 것. 겉으로는 자유롭고 대범하지만, 그 안엔 흔들림 없는 신념이 깃들어 있었다. '파격의 멋과 맛'은 단순한 일탈이나 반항이 아니라, 내면의 중심을 지닌 자(者)만이 구현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와 예술적 기개를 말함이리라.


이튿날, 우리는 ‘류경관’ 작가의 집으로 초대받았다. 그의 집은 마치 아트 갤러리에 들어선 듯했다. 집안 곳곳에는 구상과 비구상이 조화를 이루는 예술 작품들로 즐비했다. 서예에도 깊은 조예를 가진 작가의 작품 —狂(광), 花(화), 春風拂面(춘풍 불면) —은 이미 ‘知好樂(지호락: 알고 좋아하고 즐김)’의 경계를 넘어 ‘狂(미침)’의 경지에 이른 듯 보였다. 특히 ‘有錢眞好(유전진호:돈의 즐거움)’라는 작품은 서예인지 회화인지 산문인지 모를 해학과 파격의 정수가 담겨 있었다.


이어진 만찬에는 베이징 최고의 요리, 바삭한 껍질의 베이징덕이 등장했다. 모두가 감탄 속에 탄성을 터뜨렸다. 초민 선생의 제자인 ‘김미란’ 박사와 남편이 합석했다. 북경의 명주라는 ‘汾酒’로 몇 순배를 돌리며 ‘파격의 맛’을 만끽했다. 중국 사람인 남편이 부른 노래는 호탕하면서도 따뜻한 진심이 담겨 있었고, 집주인이 화답한 노래는 그야말로 ‘好好漢(호호한: 진짜 사나이)’라 부를 만했다.


파격의 맛이란 파격이 남기는 깊은 여운이다. 순간의 반전이나 놀라움이 지난 뒤에도 입안처럼 마음속에 남는 감동이 ‘파격의 맛’이다. 파격의 ‘멋’이 즉각적인 매력이라면, 파격의 ‘맛’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울림이며,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아닐까.


이번 기행에서 본 중국 현대 서예의 조류는 ‘파격’ 그 자체였다. 유리창 북경 횡단 미술관의 ‘堂下之跡(당하지적: 집안의 흔적)’ 전시에는 전통을 넘어선 서민의 삶의 흔적들이 작품으로 승화되어 있었다. 질박하고 투박한 전각의 글씨체 속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파격의 미학이 배어 있었다.


기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북경 '798 예술구'에 있는 ‘왕청주’ 갤러리를 찾았다. 과거 군수공장이던 이곳은 예술가들의 손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예술 공간이었다. 왕청주의 작품은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그것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새로운 서법의 실험이었다. 묽은 먹과 붉은 주먹이 혼합된 그의 글씨는 글자인 동시에 회화였고, 예술 그 자체였다. 그의 ‘道’ 시리즈는 길의 다양한 형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었다.


왕 작가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자기 도록과 한중 작가전 도록을 선물로 건넸다. 그리고 북경의 명소 ‘那家小館(나가소관)’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이곳에는 청나라 어느 황제의 사진이 걸려 있는데 마치 황실의 연회에 초대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왕 작가는 잔을 채우고, 담배를 권하며 환대했다. 그의 모습에서 젊은 老子(노자)의 풍모가 겹친다. 그의 작품에서 보았던 ‘道’와 ‘自然’의 철학이 그의 행동에서 우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가 건넨 궐련을 받아. 입안에 스미는 연기 속에서 이번 기행을 되짚어보며 생각했다. 파격이란 기술이 아닌 태도라는 것을. 그것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오래도록 남는 울림이었다.

‘멋은 눈에 남지만 맛은 입안에 남는다.’

진정한 파격의 멋과 맛은, 그 속에 깃든 浩然之氣(호연지기)와 無爲(무위)의 자연은 흔들림 없는 자기중심에서 비롯된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파격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파격의 멋과 맛의 경계는 자유가 혼돈으로 무너지지 않고, 표현이 내면의 중심을 잃지 않는 지점에 있었다. 진정한 파격은 형식을 깨되 본질은 지키며, 놀라움을 주되 가볍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되 진정성과 일관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파격의 경계는 외적인 기준이 아니라, 자기중심이 결정하는 내면의 기준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 북경 기행의 끝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왜 나는 더 큰 꿈을 꾸지 못할까’

아직도 法古(법고: 전통)에 머무른 채 創新(창신: 새로움)을 주저하는

내 모습을 반성한다.

나는 언제 ‘파격의 멋과 맛’을 이룰 수 있을까. (2025. 0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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