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결을 따라 걷는 길

반가원과 유리창에서

by 최원돈

시간의 결을 따라 걷는 길,

반가원과 유리창에서

-북경 기행(3)

최원돈



여행지에서 마음이 향하는 방향은 늘 같다. 반짝이는 현대 건축보다, 낡고 오래된 것들. 화려한 쇼핑몰보다, 시간의 켜가 묻어 있는 시장과 골목. 북경에서 나의 발걸음은 그렇게 판자위안과 유리창을 향했다. 이번 북경 서예 기행의 목적 중 하나는 판자위안에서 붓을 사는 일이다. 그리고 유리창에서 인주와 작품 지를 사고 유리창을 구경하는 것이다.


어제만 해도 북경의 하늘은 미세먼지로 가득했는데 오늘따라 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맑고 푸르다. 도심으로 들어갈수록 고층 빌딩숲을 이룬다. ‘팬티스타킹’이라 불리는 CCTV 빌딩은 신기하다. 이 건물은 독특한 모양으로 건축물로 북경의 랜드마크라 한다. 바로 옆 中信 빌딩은 북경에서 제일 높은 마천루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빌딩 숲을 보니 새로운 중국의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빌딩 숲을 벗어나 중국 최대의 골동품 시장 반가원(潘家園)에 도착했다. 오늘은 일요일임에도 대체 근무일이라 다행히 시장은 한적했다. 북문으로 들어서니 기다랗고 널찍한 건물에 각종 상가가 꽉 들어차 있다. 판자위안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마치 다른 시간대로 옮겨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복잡하게 얽힌 골목들 사이사이, 수많은 물건이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온다.


지석 선생의 안내로 붓 가게부터 들렸다. 각종 붓이 매대와 벽장에 틈새 없이 진열되어 있다. 지석 선생이 인사를 건네니, 주인은 붓을 꺼내어 물에 씻어 한 자루씩 건네준다. 모두 붓을 세워 글씨를 써 본다. 붓의 탄력과 운필을 해보고 고르라고 했다.

“너무 급하게 흥정해서는 안 돼요. 여러 번 글씨를 써 보고 살 듯 말 듯 뜸을 들여야 해요.”

모두 사전 교육받은 대로 붓으로 글씨를 쓰고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붓 세 종류를 골랐다. 붓이라는 게 한 번 써 보면 대충 알 수도 있고, 또 아무리 꼼꼼하게 고른다고 해도 붓에 따라 다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뜸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얼른 사고 다른 곳에 들려 구경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세 종류를 5자루씩 달라고 했다.

“아니 벌써 사게요.”

“어차피 붓이랑 게 '복걸복' 아닌가요. 단골집인데 바가지 씌울 것도 아니고.”

주인이 달라는 대로 값을 치르고 났더니, 여주인이 씩 웃으며 선뜻 세필(細筆) 한 자루를 서비스라고 준다. ‘어차피 깎아 봐야 그게 그것이 아닌가’ 기분 좋게 줄 것 주고 서비스를 받으니 좋다.


옆 건물로 건너가니 난전에 좌판을 깔아 놓고 파는 곳이다. 그야말로 벼룩시장이다. 여기서는 사정이 달랐다. 두 번 다시 만 날 수 없는 사람들이라 곧이곧대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니다 눈에 띄는 물건이 있으면 눈여겨 보아 두고 흥정을 해야 한다. 덥석 사다가는 바가지 쓰기는 물론이요.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좌판을 둘러보는데, 눈에 띄는 물건 하나가 있다. 유인(遊印) 낙관인데 제법 고급 같아 보이는 하얀 옥돌로 만든, 동물 형상으로 깎아 놓은 수제품이다. 요리조리 만져보다가 일어섰다. 옆에 있던 주인아주머니가 손목을 끈다. 얼마냐고 했더니 쉽게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그냥 왔더니 얼마면 사겠느냐고 했다. 반 값을 말했더니, 손날을 세워 목으로 가져다 데며 안 된다고 했다. 손날을 목에다 데는 행동은 밑진다는 표현이라 했다. 멀찌감치 왔더니 달려와 100위안 깎아 주겠다고 했다. 안 산다고 하니 돌아서 가더니 한참 만에 또 와서 이번에는 100위안만 더 달라고 했다. 고개를 흔들었더니 그냥 돌아갔다. 한참 만에 또다시 와서 그냥 반값만 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안 살 수도 없다. 다시 가서 낙관을 살펴보았다. 그다지 흠잡을 데가 없어. 값을 치렀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지석 선생이 유인 파는 곳으로 가자며 나와 동사 선생과 용정 선생을 데리고 갔다. 여기서 나는 유인 세 개를 조금 전 난전보다 싼 가격으로 샀다. 하지만 물건의 케이스가 없다. 옆 가게에서 조금 큰 낙관으로 문장이 새겨진 것을 물었더니 난전보다 가격이 더 비쌌다. 100위안 만 깎자고 했더니 안 된다며, 두 번 다시 눈길도 주지 않는다. 케이스 가게에 들러 하나씩 넣으니 물건이 훨씬 돋보인다.

시간이 다 되어 약속 장소로 나오는데 족자 집 묵매(墨梅) 그림이 눈길을 끈다. 가격을 물고는 반 값에 달라고 했더니 목에 손날을 갖다 덴다. 그냥 왔더니 약속 장소까지 따라와서 가져가라고 했다. 약속 시간 때문에 다시 가겠다고 돌려보냈다. 지석 선생은 시간이 없다며 유리창으로 가자고 했다. 묵매가 눈에 아른거린다.

사람들은 가격을 흥정했지만, 나는 물건의 보는 데 더 집중했다. 저 작은 목각 인형은 몇 번이나 주인을 바꾸었을까. 수십 년을 견딘 찻잔은 또 어떤 손길을 거쳤을까. 판자위안은 시끄럽고 어수선했지만, 그 안엔 삶의 온기와 시간의 기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것보다, 나는 그 물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다.



북경의 유리창(琉璃窓)은 명나라가 황실을 북경으로 옮길 때 궁전을 건설하면서 필요한 유리기와를 만든 곳에서 유리창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했다. 명나라 말 청나라 왕조에는 고서적이 주로 거래되었고 건륭제 이후 ‘사고전서’를 만들면서 전성기를 누렸단다.

북경의 유리창은 조선시대 사신들이 북경으로 연행을 올 때 반드시 들렸던 필 수 코스였다. 홍대용의 ‘담헌일기’에는 유리창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홍대용이 닦은 길을 이덕무와 박제가가 이었으며, 연암 박지원도 연행을 통하여 불후의 명작 ‘열하일기를 남겼다. 박제가는 이곳 유리창에서 자신의 글씨가 나돌 정도였다. 그 후 추사 선생 역시 이곳에 들려 서책과 서화 등을 구했으며, 그의 제자 이상적은 이곳에서 서책을 구해 유배 중인 스승에게 보내어 세한도를 그리게 되었다.


유리창은 전혀 다른 결을 가진 곳이다. 거리를 따라 걷는 길은 마치 먹으로 그린 풍경화 속을 걷는 듯하다. 고서점과 화방, 붓과 먹을 파는 작은 가게들 그 모두가 말없이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나는 오래된 서화 가게에 들어가 조용히 전시된 작품들을 감상했다. 한 점의 산수화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단순한 그림이지만 그 붓질에서 화가의 철학이 느껴진다. 간결한 먹 선 하나에도 예술가의 고뇌와 철학이 묻어나는 듯하다. 말없이 흐르는 시간, 조용히 퍼지는 묵향, 유리창은 예술이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그곳의 고요함은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고, 나를 더 느릿하게,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곳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예술과 지성의 향기가 스며든 문화 공간이었다.

우리는 동쪽 거리에 있는 서점과 서화적 등을 들리면서 유리창의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나는 ’ 중국서점‘에서 ’ 산시반‘ 서첩 한 권을 샀다. 한국에도 많이 있지만 탁본으로 인쇄한 책이라 보는 순간 유혹을 이길 수 없었다.


유리창의 맛집인 ’ 노허기‘에서 요리 몇 개와 자장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육교를 지나 서쪽 거리로 가기 전에 육교 위 찻집에 들러 차를 마셨다. 이 찻집 역시 이름난 노포로’ 계공(啓功)‘ 선생이 쓴 글씨가 눈길을 끈다. 이 집에는 이름난 서예가들의 작품들이 칸칸이 진열되어 있어 전시관을 방불케 한다. ’ 우우임(于右任)‘의 초서가 눈길을 끈다.

유리창 서쪽 거리 초입에 들어서니 ’ 영보재‘ 건물이 이어진다. 초민 선생은 유리창에서 이 집이 먹여 살린다고 했다. 좌우에 들어선 영보재는 크고 화려하게 이어진다. 한참을 내려가니 한지 가게들이 나온다. 단골 가게에 들어가 작품 지와 인주 등을 샀다. 뚱뚱이 사장님에게 계산하라고 했다. 덕산 선생이 유인을 사겠다며 골라달라고 했다. 나는 둥근 모양의 낙관 두 점을 골라 한 점씩을 나누어 가졌다. 나는 ’‘신독(愼獨)’을 가졌다.


다시 영보재를 들렀다. 영보재(榮寶齋)는 청나라 강희제 11년(1672년)에 세워진 문방사우 상점이다. 유리창에서 가장 크고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이곳은 조선의 사신들이 들리던 유서 깊은 곳이라 그 규모나 상품을 보니 숙연해진다. 영보재 전시장에는 귀중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우우임, 계공, 치바이스, 모택동 등 근현대 중국 대가들의 작품들이 즐비했다.

나는 이곳에서 ‘영보재 일력(日曆)’을 발견했다. 2021년 제작한 책자인데 빨간 양장본 고급 화집이다. ‘영보재 진장(珍藏) 서화선(書畫選)’이라고 쓰여 있다. 가격은 20위안이다. 책장을 펼쳐보니 영보재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에 선별해, 왼쪽에는 작품을 오른쪽에는 일력 날짜와 일기를 쓸 수 있도록 만든 서화 365점을 실었다. 얼른 사겠다고 했더니 직원이 4년 전 것인데 괜찮으냐고 묻는다. ‘지난 것이면 어때요 귀한 작품들만 보아도 좋아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개만 끄덕였다. 이번 북경 기행의 최고 선물을 우리 돈 4천 원에 샀다. 이 책을 보며 ‘일력 난에 작품의 감상문 일기’라도 적어 보았으면 한다.


북경을 여행하면서 나는 단순한 관광을 넘어, 중국의 문화와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간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판자위안과 유리창이었다. 두 곳 모두 골동품과 전통문화를 중심으로 유명하지만, 그 분위기와 성격은 극명히 달랐다. 이 두 곳을 통해 나는 중국의 예술이 어떻게 일상에서 살아 숨 쉬고, 또 어떻게 정제된 형식으로 전승됐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골동품과 책, 서화와 묵향, 이 모든 것 속에 깃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곳은 나에게 단지 시장이나 문화거리가 아닌, 과거와 만나는 창이자, 예술이 숨 쉬는 시간의 정원에서 오늘 하루가 보배처럼 느껴졌다. 이 추억은 오래도록 나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시간의 결을 따라 걷는 길, 반가원과 유리창에서 나의 길을 찾아본다.(202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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