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퀘렌시아는 어디인가
최원돈
투우장 지친 소가 마지막 힘을 다해 도달하는 곳이 있다.
몰아치는 함성과 창끝을 피해 숨을 고르고 상처를 핥는 공간.
그곳을 사람들은 ‘퀘렌시아(querencia)’라 부른다.
이곳에 다다른 소는 더 이상 쫓기지 않는다.
그 공간은 단지 피난처가 아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신을 스스로 회복하는,
존재의 중심이자 마지막 자존의 자리다.
문득 나에게 묻는다. 나는 어디에서 숨을 고르고, 어디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가.
세상의 시선과 기대, 관계와 역할이 버거울 때 나는 어디로 가야 나를 온전히 쉴 수 있을까.
살다 보면, 주변의 사람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받는다. 해명도 설명도 무의미한 순간이 있다. 이럴 때 나는 말없이 어디론가, 나만의 퀘렌시아를 찾아간다.
그곳은 강촌의 구름방이다.
고요한 산기슭 아래 햇살 드는 그 방을 나의 퀘렌시아라 여긴 적이 있다.
낮에는 벽에 기대어 창문 너머 떠가는 구름을 보며 내 마음을 실어본다.
어스름 어둠이 찾아오면 장작불을 지피고 드러누워 지친 몸과 마음을 뉘어도 본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몸도 마음은 한 번도 편히 머문 적이 없다.
자꾸만 대문 밖을 기웃거리고, 쉼은 늘 다른 어딘가에 있을 거라 믿으며 떠난다.
그러나 떠나간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시되 묻는다. 정말 그런 곳이 어딘가에 존재하는가 하고.
사르트르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라 했고,
장자는 집착을 내려놓은 ‘소요유’ 속에서 참된 자유를 말했다.
불교에서는 하심과 무심을, 푸코는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하라고 한다.
그 모든 사유는 결국 ‘내가 나일 수 있는 자리’를 향하라고 말하고 있다.
퀘렌시아는 외부에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안의 고요가 아닐까.
결국 퀘렌시아는 찾는 곳이 아니라, 되찾는 것이다.
타인의 욕망, 세상의 목소리에서 벗어나
내 마음 깊은 곳, 말 없는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다.
진정한 퀘렌시아는 무엇인가.
‘여기 있어도 괜찮아’
‘이대로도 충분해’라고 말해주는
자기 내면을 향한 조용한 목소리이다.
그 속삭임을 듣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내 안의 퀘렌시아를 향해 나아간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조금씩 배운다.
쉼은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받아들이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202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