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음악회

by 최원돈



난 네가 빛나는 별인 것을

최원돈



오늘 태백의 하늘은 잿빛이다.

고한 하늘재를 넘는 길목에 구름이 낮게 깔리고, 곧 쏟아질 듯 축 처진 하늘이 산마루를 짓누른다. 60킬로 속도 제한이 계속되는 길 위로, 양옆으로 늘어선 옛 가옥들이 50년 전 시간 속으로 나를 이끈다.

양철지붕 아래 오래된 집들은 여전히 70년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황지연못 근처 시장 주차장은 가득 찼다. 이런 시골 도시에 무슨 일인가 의아했지만,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오늘은 산골마을 축제의 마지막 날. 그것도 윤도현이 온단다. 황가람, 권율, 김지훈까지 서울에서도 쉽지 않은 라인업이다.


“오늘 공연 꼭 봐야겠어요.”

“저녁 7시에 시작한대요.”

“아내가 좋아하니, 그래야지”


겨우 골목 깊숙한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전통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먹자골목 초입, 어디선가 익숙한 향기가 스민다.


오래전 순댓국집이다.

나는 큰딸과 함께 순댓국밥을, 아내는 소머리국밥을 시킨다. 소주 한 잔을 들이켜자 온몸이 따스하게 깨어난다. 그제야 아내가 요 며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낸다.


“자꾸 내 눈에 거슬리는 일들이 이젠 참을 수가 없어요.”


말속엔 내가 바깥에서 만나는 인연들에 대한 서운함이 스며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얹지만, 변명은 소용없다. 딸이 함께 있는 자리라 더더욱 조심스럽다. 결국 나는 조용히 듣는다. 마음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공연장으로 향하는 길, 황지연못이 눈앞에 펼쳐진다. 검룡소에서 솟는 맑은 물이 낙동강과 한강의 발원지라 하던가. 축제가 시작되려면 아직 두어 시간은 남았다.

“목욕탕이나 가자”며 아내를 달랜다.

그 이름도 정겨운 ‘그린탕’. 70년대에서 멈춘 듯 목욕탕엔 빨간 공중전화기까지 걸려 있다.


남탕엔 아무도 없다. 혼자서 욕탕을 드나들며 몸을 풀어보지만, 마음이 편치 않으니 몸도 이완되지 않는다. 억지로 열탕과 냉탕을 오가며 마음을 씻어내려 한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된다.

김지훈의 무대가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권율이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부른다.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아내가 조용히 따라 부른다.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는 이 노랫말이 아내의 마음속에 내려앉는 것을 느낀다. 세월이 지나야 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인연의 이치, 그리움의 무게.


이어서 황가람의 반딧불이가 가슴을 적신다.


“나는 네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어요.

몰랐어요, 난 네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아내의 목소리가 빗물처럼 번져온다.


“나는 네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몰랐어요, 난 네가 벌레란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그 순간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가슴속 어딘가가 찢어질 듯 아려온다.


“한참 동안 찾았던 내 손톱

하늘로 올라가 초승달 돼버렸지.”


비가 내린다. 내 가슴속에, 아내의 가슴속에도.

윤도현이 무대에 오른다. 빗속을 뚫고, 록밴드의 기타 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흰 수염고래’를 부른다.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줘, 숨기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도 언젠가 흰 수염고래처럼

두려움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길.”


아내의 젖은 눈동자가 나를 향해 번뜩인다.

비가 내린다. 하지만 꽃은 아직 지지 않았다.


“나는 네가 빛나는 별인 줄 알고 있어.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어.”


그래, 나는 지금도 아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고 있다.

세월이 지나도, 오해가 쌓여도.

그녀는 여전히 내게, 가장 눈부신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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