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방
-금요일은 나 혼자 박물관에 간다.-(2)
최원돈
'사유의 방'은 국보로 지정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된 공간이다. 사유의 방을 걸어 들어가면 어둡고 고요한 진입로에 끝없는 물의 순환과 우주의 확장이 영상으로 펼쳐진다. 시공을 초월한 초현실의 감각을 일깨우며 반짝임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반짝이는 별빛 아래 미세하게 기울어진 벽과 바닥, 천장 등 현실의 물리적인 원근감이 사라진 공간에서 반가사유상을 만날 수 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은 세상 너머를 바라보는 듯, 고뇌하는 듯,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듯,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다. 흙, 숯, 계피등 자연이 선사한 편안함을 오감으로 느끼며, 사유의 방에서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사유에 동참하는 나만의 여정을 만들어 본다.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이라는 명칭은 상像의 자세에서 비롯되었다. '반가半跏'는 양쪽 발을 각각 제 다른 쭉 다리에 엇갈리게 얹어 앉는 '결가부좌結跏趺坐'에서 한쪽 다리를 내려뜨린 반半가부좌 자세이다. '사유思惟'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손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자세를 나타낸다. '반가의 자세로 한 손을 빰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불상'을 '반가사유상'이라고 한다. 이 자세는 석가모니 부처가 태자 시절 인간의 생로병사를 깊이 고뇌하며 명상에 들었던 모습에서 비롯되었고, 중생 구제를 위해 깨달음을 잠시 미루고 있는 보살菩薩의 모습으로도 표현되었다. 살짝 다문 입가에 잔잔히 번진 미소는 깊은 생각 끝에 도달하는 깨달음의 찰나를 상징한다.
신앙의 경지를 최고의 예술로 승화시킨 두 국보 반가사유상은 세속의 감각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두 반가사유상은 표정, 옷차림, 크기와 무게, 제작 시기가 다르지만 절묘한 조화와 균형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을지닌다.
두 반가사유상 중 6세기 후반에 제작된 반가사유상은 날카로운 콧대와 또렷한 눈매, 그리고 화려한 보관 및 장신구와 정제된 옷 주름 등이 특징으로 꼽힌다. 양옆으로 휘날리는 어깨 위의 날개 옷은 생동감을 주고, 옷 사이로 살짝 드러난 목걸이와 팔 장식은 화려함을 더한다. 반면 하반신의 옷주름은 층층이 흘러내리며 차분하게 정돈되어 있다.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반가사유상은 단순하고 절제된 양식을 보여 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반신, 세 개의 반원으로 이루어진 보관寶冠의 형태와 두 줄의 원형 목걸이는 간결함을 더한다. 반면, 무릎 아래의 옷 주름은 물결치듯 율동감 있게 표현되어 입체적으로 흘러내리며 역동성을 보여 준다. 양손의 손가락에선 섬세함이 느껴지고, 힘주어 구부리고 있는 발가락에는 긴장감이 넘쳐흐른다. 화려하면서도 절제되고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두 반가사유상은 조화와 균형의 미학을 보여준다.
두 반가사유상에는 삼국시대의 최첨단 주조 기술이 담겨 있다. 주조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수직과 수평의 철심으로 불상 머리에서부터 대좌까지 뼈대를 세운 뒤에 점토를 덮어 형상을 만든다. 거기에 밀랍을 입혀 반가사유상 형태를 조각한 다음, 다시 흙을 씌워 거푸집을 만든다. 거푸집에 뜨거운 열을 가하면 내부의 밀랍이 녹아 반가사유상 모양의 틈이 생긴다. 여기에 청동물을 부어 굳힌 다음 거푸집을 벗기면 반가사유상이 완성되고 표면에 금을 입혀 마무리한다. 청동물이 굳으면서 거푸집이 깨질 수도 있는데 6세기 후반 상의 두께는 0.2cm~0.5cm, 7세기 전반 상의 두께는 약 1cm로 일정하여 삼국시대 최고의 주조 기술로 반가사유상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제작 당시 주조 과정에서 두 반가사유상의 일부분을 보수했지만, 사람의 눈으로는 그 흔적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기에 당시 금속 가공 기술 역시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박물관이 반가사유상을 입수한 경위를 살펴보면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반가사유상은 1912년 이왕가李王家박물관이 일본인 고미술상에게 2,600원이라는 큰돈을 주고 구입했다. 또 다른 한 점은 같은 해에 조선총독부가 사업가이자 골동품 수집가인 일본인에게 4,000원을 보상해 주며 구입했고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입수하였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1945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을 인수하고 1969년 이왕가박물관 [덕수궁미술관] 소장품을 통합하였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언제 어디에서 만들었고,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발견했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보관 상태, 장신구, 옷주름 모양 등을 마애불이나 출토지가 밝혀진 다른 반가사유상과 비교하여 볼 때 7세기 전반 반가사유상은 신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상과 매우 흡사한 일본 교토 고류사(廣隆寺)의 목조 반가사유상은 신라에서 보낸 것으로 전해져, 고대 한일 문화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 도록 2024.9.27.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사유의 방 입구는' 물과 우주의 영상' 속의 긴 터널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아득한 옛날로 들어서는 듯하다.
사유의 방에는 옅은 붉은빛 가운데 두 반가사유상이 고요히 삼매에 들어있다. 옅은 미소가 은은히 다가온다. 저렇게 편안하고 평화로운 미소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염화미소라 했던가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 짓게 한다. 해탈의 경지일까. 사유의 극치일까. 나도 바닥에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고 반가사유상을 번갈아 바라본다.
누가 이 보살을 부처가 되기 전 해탈을 얻으려는 모습이라 했던가. 이미 해탈의 경지를 이룬 부처의 모습이다.
무엇을 사유하길래 저런 미소가 나올 수 있을까. 고뇌라고는 어디에도 없는 해탈의 모습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미소가 저런 미소였을까. 생사의 고뇌를 초월한 부처의 미소이다.
'세상 너머를 바라보는 듯, 고뇌하는 듯,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듯,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다.'
'사유의 경지'란 무엇인가.
사유(思惟), 산스크리트어: cintanā는 대상을 구별하고 생각하고 살피고 추리하고 헤아리고 판단하는 것 또는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사유(思惟)는 대체로 제6식에 의한 분별을 말한다. 선정에 의해 나타나는 바른 지혜 즉 '보살의 수행'으로 '정사유'에 대한 견해로, 사성제의 이치를 깊이 사유하여 관(觀)을 더욱 향상하는 것을 말한단다.
한참을 반가사유상을 바라본다.
높은 보관을 쓴 반가사유상은 산라화랑의 모습 같고, 낮은 보관을 쓴 반가사유상은 백제의 관창 모습 같다.
두 반가사유상은 언제부터 함께 있었을까.
어찌 보니 연인 같아 보인다. 이 둘은 각방에 있다 이곳 '사유의 방'을 만들면서 합방을 했다고 한다.
이 두 반가사유상이 신라와 백제에서 만들어졌다면 참으로 기막힌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영원토록 '사유의 방'에서 함께 하기를 소망하며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사유의 방 곳곳에 별빛이 가득하다. (202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