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홍매화 보러 간다
최원돈
봉은사 홍매화가 피었다.
글 쓰는 사람들은 너도 나도 매화를 보러 간다. 나는 몇 번을 벼른 끝에 겨우 시간을 내어 봉은사로 간다. 오늘따라 화창한 날씨는 아니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봄 날이다.
집을 나서는데 전철역 앞에서 아내의 절친 동생을 만났다
"형부 어디 가세요."
"봉은사 가요. 홍매화 보러."
왜 혼자 가냐고는 묻지 않는다. 오늘은 나 혼자 국중박 가는 날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봉은사 입구에 금동 봉황새 솟대가 섰다. 언제 세운 것일까. 천운산 봉은사 띠를 날리고 있다.
일주문 앞에는 중국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일주문 사천왕상에 두 손을 모아 반배를 올리고 들어서니 '사시공양'* 예불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온다. 사리탑 언덕 위 노란 산수유가 손짓을 한다.
봉은사 명상길로 접어 선다. 이 길은 봉은사 숲 안에 조성된 산책길이다. 봉은사는 794년 신라 연희국사가 견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조선 연산군 4년(1498년) 정현왕후가 사찰을 중창하였으며, 1592년 명종 17년 문정왕후가 수도산 아래로 옮겨 봉은사로 정하였다. 봉은사는 보우대사, 서산대사, 사명대사를 배출한 천년고찰이다.
조릿대 오죽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니 붉은 홍매 두 그루가 수줍은 듯 얼굴을 내민다. 멀리 법왕루 홍매 앞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홍매 앞 넓적 돌 위 꼬마 돌탑이 빼곡하다.
명상길 계단 양쪽으로 맥문동과 조릿대 사이로 사사초가 긴 타원형 잎을 내밀고 있다. 산아래 대웅전 경내에는 하얀 목련이 피어있고 붉은 연꽃등이 가득하다. 작은 돌로 쌓은 돌무덤 아래 칠성각 옆에 홍매가 우뚝하다.
돌무덤 사잇길로 내려가니 '世界一花'* 꽃천지이다. 영각 옆 우뚝한 홍매는 시들고 있지만 아직은 송이마다 붉다. 스케치 나온 화가들이 곳곳에 앉아 그림에 열중이다. 나무 숲 속 아름다운 자태의 수양 홍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금 막 피어난 스무 살 처녀의 얼굴 같다. 수줍은 듯 비켜선 모습이 나를 사로잡는다.
"어쩌면 저리도 고운 자태일까.'
늘어진 가지 끝에 매달린 홍매를 보니 스무 살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스라이 하늘을 보니 희뿌연 햇살 속에 붉은 꽃 잎과 노란 꽃 술 사이로 그 옛날 아내의 얼굴을 보는듯하다. 젊은 시절 나는 아내와 함께 꽃구경을 가면 아내의 사진 찍기를 즐겨했다. 지금도 나의 서재에는 그때 찍은 아내의 사진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오늘도 나는 봉은사에 홍매를 보러 간다고 했지만 아내는 따라나서지는 않았다. 청바지를 입고 가라며 챙겨 주었다. 오늘도 아내는 바쁘다. 에어로빅과 요가에 한국 무용까지 하러 간다. '취미생활을 전쟁하듯이 한다.' 이 말은 내가 노상 듣던 말이다.
나는 왜 봉은사 홍매화를 보러 왔을까.
젊은 시절 아내의 모습이 그리워서일까.
봉은사 수양 홍매 앞에서 나의 '버마재비'* 아내를 그려본다.(2026.03.27)
사시공양 : 사찰에서 오전에 올리는 예불.
世界一花 : 세상은 한 송이 꽃이라는 뜻으로 불교의 자비와 지혜를 나타낸다.
버마재비 : 사마귀를 일컫는 말. 나를 지켜보는 파수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