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사로잡은 호러쇼

by 연산동 이자까야

여적(餘滴). 붓 끝에 남아있는 먹물이라는 뜻. 조선 후기 학자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오징어 먹물로 글을 쓰면 나중에는 먹은 사라지고 빈 종이만 남는다. 간사한 자들이 이것(먹물)을 써 사람을 속인다”고 했습니다. ‘먹물’은 흔히 배웠다는 식자층을 얕잡아 부르는 말.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 불의에 맞서야 할 때 몸을 사리거나 개인적인 이익만 추구는 기회주의자에게 ‘먹물 근성’이 배였다고 합니다. 정치판을 흔들고 있는 ‘고발사주’ 의혹과 ‘대장동 개발’ 의혹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먹물’입니다. 정치인부터 검사·변호사에 언론인까지.

21764_1632986229.jpeg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화천대유자산관리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30일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이첩했습니다. “현직 검사의 관여가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대장동 의혹’의 불똥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 여야는 각각 ‘국민의힘 게이트’와 ‘이재명 게이트’ 프레임을 내세워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시작했습니다. 국민의힘은 특정인에게 막대한 수익을 몰아주도록 대장동 사업을 ‘설계’한 사람이 이재명 경기지사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곽상도 의원 아들(퇴직금 50억 원)과 원유철 전 의원의 고문료에 이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 가족까지 연루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면서 역공.


‘고발 사주’ 의혹은 얽힌 사람이 워낙 많아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대장동 의혹’ 역시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지분·수익구조에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얽혀 있어 수사기관의 움직임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권력과 돈이 모이는 곳에는 자칭 전문가라고 목에 힘주는 ‘먹물’들이 귀신 같이 달려들어 이익을 챙긴다는 겁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인생 패배자들의 생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세계를 사로잡은 지옥 같은 호러쇼”라고 하더군요. 대장동과 고발사주 의혹은 ‘먹물들의 호러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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