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王)과 리바이어던

by 연산동 이자까야

신라의 왕호는 특이합니다. 거서간(1대 박혁거세)과 차차웅(2대 남해)을 거쳐 3대 유리부터 16대 흘해까지 이사금을 사용. 17대 내물부터 21대 소지까지는 마립간으로 불립니다. 중국식 칭호인 왕(王)은 22대 지증왕부터 사용. 전제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왕자문회의가 의회 역할을 대신합니다. 절대 권력자라도 돌아가는 곳은 똑같습니다. 2015년 타계한 압둘라 국왕은 평민이 묻히는 공동묘지에 안장. 이슬람 근본주의(와하비즘) 교리에 따라 죽어서 평민이 된 셈.

21764_1633244849.jpeg 지난 1일 MBN주최로 열린 국민의힘 대선주자 5차 TV토론회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홍준표 의원과의 1:1 주도권 토론에서 손을 들자 손바닥에 적힌 '왕'자가 포착됐다. 연합뉴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왕인 세종은 여론조사 개척자였습니다. 무려 18년 동안 17만 명의 민심을 듣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조선왕조 600년의 기틀을 닦은 조세 개혁을 추진했거든요. 왕정이 폐지되면서 백성은 ‘시민’이자 ‘유권자’가 됩니다. 저잣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지 않고 예전처럼 ‘왕 노릇’ 하던 대통령은 권좌에서 쫓겨나기도 합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손바닥에 그려진 ‘왕(王)’자가 주말을 달궜습니다. 경쟁자인 홍준표 의원은 3일 SNS에서 “무속 대통령 하려고 저러나 의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을 시켜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허무맹랑한 소문 하나로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비판. 정치검사가 차기 대통령이 궁금해 무당을 찾아가는 영화 ‘더킹’의 한 장면이 소환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윤 전 총장 측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지자가 왕과 같은 기세로 자신감 있게 토론 잘하라고 써준 것” “원래 홍판표였던 홍 의원의 현재 이름은 역술인이 지어준 것이라는 걸 홍 의원은 잊었는가. 본인의 개명이야말로 주술적이란 지적에 뭐라 변명할지 궁금하다”고 역공.


진실이 무엇이든 ‘왕(王) 논란’은 몇 가지 성과(?)와 화두를 남겼습니다. 하나는 대권 후보들의 수준 확인. 둘째는 지배자가, 자발적인 투표를 통해, 지배 받는 정치제도에 대한 통찰. 권력자는 언제든 성서에 나오는 괴물 ‘리바이어던’으로 변할 수 있으니 제대로 감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성과라면 성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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