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박대(門前拍大).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문 앞에서 박수받으며 떠나는 것이 소망”이라는 의미로 썼던 단어입니다. 독일에선 16년을 집권했는데도 ‘독재자’가 아니라 ‘무티(Mutti·엄마)로 불리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중도 우파인 기독민주당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67)가 주인공. 지난 9월 연방하원 선거에서 승리한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SPD)은 25일 녹색당·자유민주당(FDP)과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했습니다. 차기 총리 후보인 SPD의 올라프 숄츠는 이날 동지이자 경쟁자인 메르켈에게 사랑과 존경이 담긴 꽃다발을 선물. 숄츠가 메르켈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한 만큼 정책의 연속성에 무게가 실린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새 정부가 과거 정부의 핵심 정책을 싸그리 뭉개는 우리나라와는 확실히 다른 풍경.
메르켈은 2005년 독일 역사상 첫 여성 총리이자 동독 출신 첫 총리. 물리학자였던 그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1989년 옛 동독의 정치단체 중 하나인 민주궐기(DA·훗날 기독민주당)에 합류합니다. 메르켈의 별명 중 하나는 ‘협상의 기계’. 정치 노선이 달라도 대화와 타협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와 유럽 부채위기(2010·2011·2015년) 극복은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 시리아 내전으로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유럽으로 밀려들었던 2015년에는 “우리는 해낼 수 있다”면서 인원 제한 없이 국경을 개방하는 통 큰 리더십도 선보입니다.
메르켈은 역사 앞에서 겸손했습니다. 퇴임을 앞둔 지난 10월 8번째로 이스라엘을 방문해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사과합니다.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마저 “메르켈은 유럽의 도덕적 나침반 역할을 했다”고 찬사. 미국 ABC 서독 특파원을 지낸 케이티 마튼의 저서 ‘메르켈 리더십’을 읽다 보면 ‘정치가 좋은 일을 하는 직업’이라는 믿음마저 생깁니다. 굿바이, 메르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