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만 해도

by 연산동 이자까야

1992년 2월 11일 부산 남구 대연동 초원복국의 지하방에 정·경·관계 인사들이 들어섭니다. 당시 김기춘 법무장관부터 부산시장·부산경찰청·부산지방검찰청 수장과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부산지부장까지. 그들은 14대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YS)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합니다. 그날 나왔던 유명한 말이 “우리가 남이가!” 정주영 후보를 내세운 통일국민당이 몰래 녹음기를 가져다 놓고 도청하지 않았다면 역사에 묻힐 뻔한 희대의 코미디입니다.

21764_1641386802.JPG 부산 남구 대연동 초원복국 대연본점 앞에서 초원복국을 운영하는 백경희(오른쪽부터) 김동식 씨와 그의 아들 김호철 씨가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 국제신문DB

올해는 초원복국 사건 30년이 되는 해. 제20대 대통령선거도 두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국제신문이 초원복국 대표인 김동식(65) 씨와 아내 백경희(60) 씨를 만나러 간 이유입니다. 부부는 “그때 전화 10통 중 9통은 욕설과 공갈이었다. ‘부산 바닥에서 장사해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폭발물을 설치하겠다’는 협박 때문에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까지 했다. 마침 YS가 당선되면서 (협박) 전화가 잠잠해졌다”고 회상합니다. 권력욕에 눈 먼 인사들 때문에 민초가 예기치 못한 고통을 당한 셈. 당시 초원복국 사건을 가까이서 지켜본 정치평론가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YS가 당선자 신분으로 첫 기자회견을 했을 때 기자들이 초원복국 사건에 대해 질문했다. YS는 사과 하기보다 ‘도청이 공작정치’라고 프레임을 바꿨다. 결국 제대로 된 반성이 뒤따르지 못했다”고 평가.


초원복국은 1983년 연산동에서 출발했다가 1986년 영도를 거쳐 1991년 대연동에 자리 잡습니다. 래퍼 출신인 김 씨의 아들 호철(36) 씨는 현재 초원복국 범일점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네요. 김 씨는 초원복국의 비결로 원재료를 꼽습니다. “기본 재료가 좋아야 맛이 있다. 국물도 복 고유의 맛을 내기 위해 다시마 무 파 딱 세 가지만 넣는다.” 역시 기본이 가장 중요한가 봅니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고생한 김 씨 부부가 앞으로는 무탈한 삶을 사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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