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학경(1951~1982). 부산 출신 예술가. 뉴욕타임즈(NYT)가 11일 국내에선 다소 생소한 ‘차학경’을 재조명했습니다. 열 한 살에 미국으로 건너간 차학경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와 프랑스에서 비교문학과 미술·영화·사진·설치예술을 전공. 생전에는 “미국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던 예술의 선구자”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가 글로 남긴 유일한 창작집은 프랑스어로 받아쓰기라는 뜻의 ‘딕테(DICTEE)’. 유관순·잔 다르크와 만주 태생인 자신의 어머니 삶을 복잡하게 교차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낸 전위적인 작품이라고 하네요.
차학경은 ‘딕테’가 출판된 해인 1982년 11월 뉴욕의 한 주차장에서 경비원에게 목숨을 잃습니다. 불과 31년의 짧은 생에도 이산의 기억과 언어의 상실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은 20세기 후반 미국 예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집니다.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1993년 차학경 회고전을 연 데 이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안토니 타피에스 미술관도 특별전을 열기도. 휘트니미술관에서 한국계가 개인 전시회를 한 것은 1982년 백남준에 이어 두번째. 딕테가 처음 출간됐을 때는 ‘한 작가로서 두 번 다시 쓸 수 없는 절대의 책’이라고 호평 받았었죠. 요즘도 버클리를 포함한 많은 미국 대학이 ‘딕테’를 페미니즘과 아시아계 연구 수업의 교재로 쓰고 있습니다.
NYT가 차학경을 40년 만에 재조명한 것은 ‘간과된 인물들’(Overlooked)이라는 시리즈의 일환입니다. 앞서 NYT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고발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와 유관순 열사의 부고 기사를 싣기도. 역사를 기억하면서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일이 언론의 가장 중요한 책무임을 NYT 덕에 다시 한 번 상기합니다. 차학경의 ‘받아쓰기’와 오피니언 리더(특히 정치인)의 말을 별다른 팩트체크 없이 받아쓰는 ‘따옴표 저널리즘’은 본질부터 다르니 오해 없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