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주민에게 고통만 강요할 것인가

by 연산동 이자까야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7일 이사회에서 고리원전에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을 설치하는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고리원전 같은 경수로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는 현재 물 속에 저장하는 습식저장시설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고리원전에 보관 중인 습식저장시설이 곧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취한 조처로 보입니다. 핵연료를 물에서 꺼낸 뒤 콘크리트 구조물에 저장하는 것입니다. 원전 대지에 경수로 건식 저장시설이 생기는 것은 처음입니다.

고리원전 2호기 전경. 국제신문DB

문제는 건식저장시설이 임시가 아닌 장기로 운영돼 결국 방사능폐기물저장소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는 점입니다. 방사능폐기물저장소를 설치하려면 수십년이 걸리는데 아직 논의조차 하고 있지 않으니 지역민이 이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안전하다고 말만 할 게 아니라 이런 우려를 불식할 만한 뭔가가 필요합니다.


원전이 있는 지역민은 위험시설만 짓고 아무 혜택 없이 의무만 강요하는 이런 행태에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전기요금 차등 적용입니다. 이른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입니다.


원전이 있는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차등요금제를 내용으로 한 법안을 발의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박수영(부산 남구갑) 의원에 이어 한빛원전이 있는 전남지역 의원도 같은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신정훈(전남 나주시 화순군)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기사업법 일부 개정안’은 원전과의 거리에 따라 전기요금을 책정한 게 골자입니다. 월성·한울원전이 있는 대구·경북 일부 의원들도 차등요금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정부도 차등요금제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위기입니다. 국제신문이 국회 회의록을 확인했더니 산업통상자원부 박일준 2차관이 지난해 11월 2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출석해 “(전기) 송·배전에 따른 비용을 지역별로 차등해서 (전기요금에) 적용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달리 적용하는 국가가 다수 있습니다. 영국은 송전망 이용 정도에 따라 요금을 다르게 부과합니다. 미국과 호주도 장거리 송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합니다.


정부는 원전 지역민에게 원전 수명 연장과 건식저장시설 설치 등 문제를 어떻게 설득할 것입니까. 원전 문제는 밀어붙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은근슬쩍 넘어가려 하다가는 큰 저항에 부딪힐 것입니다. 정부는 검토할 내용이 적지 않다는 태도에서 벗어나 이제는 차등요금제 같은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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