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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산동 이자까야 May 19. 2021

달걀 6000개에 깃든 불심

부산 금정구 을파소 관음사의 법당은 작은 갤러리입니다. 운곡 스님이 선명서화(禪名書畵)를 전시했거든요. 선명서화란 부처님의 명호나 법명을 그림으로 표현한 선서화. 휴대전화로 선명서화 아래 QR코드를 비추면 명상 음악까지 흘러 나옵니다. 


백흥사의 룡해 스님은 기타가 전공입니다. 불경 시간에 잠 드는 신도들이 안타까워 직접 작곡한 노래를 들려준다고 하네요. 지난 30년 간 작사·작곡한 노래가 3000여 곡. 운곡 스님의 선명서화나 룡해 스님의 노래 모두 깨달음을 나누는 마음 공양인 듯 합니다.

부처님오신날을 하루 앞둔 18일 부산 금정구 범어사에서 한 신도가 등을 달고 있다. 국제신문

청룡노포동의 작은 암자 혜일암은 최근 달걀 6000개를 준비했습니다. 20년 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던 무료 밥상을 중단한 게 마음 아팠거든요. 청룡노포동은 인구의 28%(2720명)가 65세 이상 노인. 혜일암이 일주일에 두 번 정성껏 밥상을 차릴 때마다 600명 이상이 찾았습니다. 한 끼가 아쉬운 분들은 물론 홀로 끼니를 때우고 싶지 않은 어르신들까지. 우신 스님은 “코로나19 여파로 무료 급식을 1년 넘게 중단해 너무 서운했다. 어르신들이 잘 드시던 달걀 반찬 대신 달걀을 마련해 나누려 한다. 어서 건강한 얼굴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에 불심을 생각합니다. 자연은 고승대덕의 설법처럼 청정법신(淸淨法身)을 펼쳐내건만 인간 세상은 치유해야 할 아픔이 너무 많습니다. 경기도 평택항에서 숨진 23세 청년 고(故) 이선호는 “모든 죽음은 평등하지 않다”고 외치는 듯 합니다. 달력에 빨간 색이 칠해진 오늘도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자만 일터로 내몰린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무쇠 부처는 용광로를 건너가지 못하고/나무 부처는 불을 건너가지 못하며/진흙 부처는 물을 건너가지 못한다.” 선불교 문헌 중 하나인 ‘벽암록(碧巖錄)’에 실린 96번째 공안(公案·깨달은 자의 선문답)입니다. 진짜 부처는 내 안에 앉아 있다는 의미. 오늘 하루라도 우리 모두 부처가 돼 마음에 등불 하나 밝히는 건 어떨까요. 불평등, 차별, 죽임의 문명을 몰아내고 자비를 퍼트리는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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