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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산동 이자까야 May 31. 2021

밀면이 움직인다

맛칼럼니스트 박상현은 봄과 여름의 경계를 알려면 “부산의 밀면집 앞을 보라”고 합니다. 밀면 대기 행렬이 길어질 때가 여름이라는 겁니다. 밀면의 서사는 1950년 ‘흥남철수작전’에서 시작됩니다. 6만여 명의 피란민들이 배를 타고 부산에 닿았죠. 함경도의 척박한 산에서 자란 감자나 옥수수 전분으로 뽑은 면에 생선을 삭혀 만든 식해를 고명으로 얹은 음식이 ‘농마국수’. 남한에 정착한 농마국수는 원형을 유지한 함흥냉면과 부산에 뿌리내리려 독자적인 생존을 모색한 밀면으로 분화됩니다. 박상현은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이 피란민의 디아스포라의 흔적이라면 밀면은 부산에 뿌리내리기 위해 몸부림친 생존의 결과”라고 평가합니다.

밀면의 원조인 부산 남구 '내호냉면'의 밀면. 국제신문DB

밀면 원조는 부산 남구 우암2동 ‘내호냉면’. 1대 사장 고(故) 이영순은 1919년부터 흥남시 내호리 내호시장의 ‘동춘면옥’에서 냉면을 팔다가 피란길에 오릅니다. 이 씨의 딸(정한효)은 미군 보급품이던 밀가루를 이용해 밀면을 만들죠. 1984년부터는 정 씨의 며느리인 이춘복에 이어 자제들이 4대째 가업을 지키고 있습니다. 내호냉면의 밀면 밀키트가 내달 2일부터 홈쇼핑 채널을 타고 전국 안방으로 진출합니다. 밀키트는 면(220g) 육수(180g) 양념장(85g)을 한 세트로 총 10봉으로 구성. 기호에 따라 비빔밀면과 물밀면으로 즐길 수 있다고 하네요. 


걱정도 있습니다. “인간이 소비하는 모든 재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희소성이다. 향토음식의 희소성은 일부러 그곳에 찾아가야만 먹을 수 있다는 ‘번거로움’과 음식이 탄생한 공간·정서 속에서 먹는다는 공감각적 ‘체험’에서 비롯된다. 번거로움과 체험을 거세하면? 당연히 희소성은 줄어든다. 희소성이 사라진 향토음식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을까(박상현의 ‘끼니’ 中).” 집에서 전국의 향토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밀면 밀키트에 반한 사람들이 오히려 ‘원조’를 맛보려고 부산을 찾는 날이 오길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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