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과잉 단속으로 짓밟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인권

by 연산동 이자까야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국제신문에 입사하기 전 대학생이었을 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오랫동안 했었어요. 아르바이트를 했던 편의점 중 한 곳은 이주노동자들이 유독 많이 방문했었는데요. 그때 조금이나마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죠. 라노가 들을 수 있었던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다른 나라에 와서 일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숙소는 좁은 데다 열악하고, 월급이 밀려 각종 공과금을 내지 못하기도 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지만 말은 못 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걸 알았어요.


21764_1700386819.jpg 지난 7일 경북 경주의 한 공단. 법무부 직원이 여성 노동자를 강제로 끌고 가는 장면이 SNS를 통해 확산했다. 틱톡 캡처

우리나라 법무부에서 국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강압적으로 단속하는 영상이 SNS를 통해 확산되며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틱톡에 게시된 약 50초 분량의 단속 현장 영상은 지난 7일 경북 경주시의 한 공단에서 촬영됐습니다. 영상 속에는 법무부 소속 남성 직원이 여성 이주노동자를 강압적인 방식으로 다른 직원에게 인계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이 영상은 페이스북 트위터 틱톡 등 SNS를 통해 빠른 속도로 확산했죠.


문제의 영상을 본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입을 모아 지적했습니다. 인권침해에 가까운 단속은 이전에도 다수 발생했지만, 이번에는 SNS를 통해 영상이 퍼지며 '과잉단속'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은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과도한 단속행위로 사망한 사람이 여럿 있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현행법상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행정범'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형사범을 체포하는 방식에 준하게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신체를 구속하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죠. 라이 위원장은 "우리가 모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사망사건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비인간적인 단속행위를 지속해선 안된다"며 "문제의 영상 속 법무부 직원을 책임지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네팔에서 이주해 한국에서 일한 지 12년이 된 디만(38·가명) 씨는 "5년 전, 영상 속 장면처럼 비인간적인 단속을 직접 목격한 적 있다"며 "친구들이 억지로 끌려나가는 모습을 본 뒤 많이 힘들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주노동자도 사람이고, 정직하게 노동하는데 미등록된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과격한 대우를 받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죠. 디만 씨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친구들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미등록 상태가 됐고, 자신이 현재 불법으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는 사실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왜 미등록 상태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는지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25만 명이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2018년 35만 명으로 급증했고,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올해 9월 기준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42만 9000명으로 추정됩니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죠. 정영섭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가는 "이주노동자들이 미등록 상태에 놓이게 된 근본적 원인을 생각해 봐야 한다. 미등록자가 생기는 건 이주노동자가 비자를 잃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이라며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거주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합니다. 비자는 사업장에서 발급이 가능하죠.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가 한 번 입국한 뒤 최대 3번까지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제한을 걸었습니다. 예외적인 이유에 한해 횟수와 상관없이 사업장을 옮길 수 있지만 동의·허가 없이 사업장을 옮기면 비자가 발급되지 않습니다. 합법적으로 퇴사했다고 하더라도 직전 사업장 퇴사 후 3개월 이내에 재취업해 서류 등록을 하지 못하면 비자를 잃게 됩니다. 3~4년 동안 한 사업장에서 일한 이주노동자도 입국 4년 10개월 뒤에는 무조건 본국으로 돌아간 뒤 6개월이 지나야 다시 들이올 수 있는데, 이 시기를 놓치면 미등록 상태가 되죠.

21764_1700386799.png 지난 6월 15일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2차 정부 합동단속 규탄 공동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 비자 발급은 사업장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 항의하기 쉽지 않죠. 사업장에서 해고되면 비자가 나오지 않고, 사업장 측에서 근무자 이탈 신고를 하면 불법 체류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은 비자를 잃기 쉬운 구조 속에 빠져있습니다.


정 활동가는 "사업자 변경 제한을 없애 이주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업장을 옮길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일을 그만두는 데 왜 사업장 동의가 필요하냐?"고 지적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근무자 이탈 신고도 없애고, 재취업 서류 등록 기간도 연장해야 한다고 조언했죠. 정 활동가는 "고용 허가 기간인 4년 10개월도 짧은 기간이다. 기간을 좀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단일민족' 국가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올해 9월 말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장·단기체류 외국인은 총 251만4000명으로 전체 인구 5137만 명의 4.89%나 차지합니다. 국내 외국인 비중이 5%를 넘어서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다인종·다문화' 국가에 진입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다인종·다문화 국가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죠.


정지숙 이주민과함께 상임이사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제도가 따라주지 않아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생기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농촌·어촌 등은 항상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장에서는 '일에 능숙한' 이주노동자를 원하죠. 노동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숙련 기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짧고 비자 변경은 어렵습니다. 고용주들은 직원을 구하기가 어려운 열악한 환경을 사업장을 운영해 불법 체류 상태를 알고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계속 고용합니다. 번거로운 고용허가제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더 손쉽고, 해고도 쉽기 때문에 단속에 걸려 벌금을 내야하는 상황을 무릅쓰고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죠. 정 상임이사는 "우리나라는 이주노동자를 제외하면 일할 인력이 없는 업장이 많다. 이주노동자들이 합밥적으로 오랫동안 한국에 거주할 수 있는 방안을 제고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공매도', 이거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