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때 바다를 지배하던 황제였어요. 최상위 포식자로서의 권위를 누리며 파도를 가르고 바다를 누볐죠. 제주 연안에 뿌리내리고 많은 동료들과 함께 살아갔어요.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들이 많아졌어요. 맑고 푸르기만 했던 바다는 온갖 해양 쓰레기로 더럽혀졌고, 낚싯줄과 폐어구가 몸에 감겨 상처가 나고 지느러미가 잘리는 동료들도 생겼어요. 연안 개발 사업으로 인한 진동과 소음은 우리를 괴롭게 만들었죠. 우리를 구경하겠다며 뒤꽁무니를 쫓아오는 선박들은 스트레스를 잔뜩 안겨줬어요. 우리는 그저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어요. 우리에게 보금자리를 지킬 수 있는 권리는 없는 건가요?"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이번 주 와이라노는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시작했어요.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현재 11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으로 해양 생태계 파괴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중이에요. 이런 남방큰돌고래를 위해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생태법인' 제도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어요.
지난 13일 제주특별자치도는 멸종위기에 처한 제주남방큰돌고래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 개선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제주도는 이를 위해 제주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생태법인 제도를 부여하는 방식, 특정 생물종이나 핵심 생태계를 지정해 생태법인으로 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죠. 생태법인 도입이 무사히 이뤄진다면 오는 2025년 남방큰돌고래는 생태법인 제1호로 지정될 예정입니다.
남방큰돌고래가 생태법인 1호로 지목된 건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남방큰돌고래는 제주도 해녀와 오랜 기간 교감을 나눠온 동물입니다. 남방큰돌고래는 방어막을 형성해 다른 포식자들의 접근을 막고 해녀들을 보호해 왔죠. 게다가 고래 한 마리는 일생동안 평균 33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기후위기 극복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제주도 특별자치제도추진단 관계자는 "예전에는 남방큰돌고래들이 많이 보였는데 최근에는 서식 환경이 악화돼 110여 마리만 관찰되고 있어요. 남방큰돌고래는 제주인과 오랫동안 공존했고, 기후위기와도 관련있기 때문에 생태법인 1호로 지정했죠"라고 말했습니다.
'귀하신 몸'인 남방큰돌고래는 지금까지 "우리 남방큰돌고래들은 보금자리를 더럽혀 강제 이주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어요!"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법률 상 자연과 동물은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주체는 사람과 법인뿐입니다. 기업과 재단 등의 법인도 누릴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살아 숨 쉬는 자연과 동물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이 파괴당하고 동물이 피해를 입어도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다분히 인간중심주의적인 법률 때문이었죠.
그래서 '생태법인'이라는 제도가 추진됐습니다. 생태법인은 생태적 가치가 큰 동·식물이나 자연환경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법인격이 부여되면 동·식물도 후견인 또는 대리인을 통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됩니다. 단순히 사람이 그들을 보호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인간과 동등하게 법적 권리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공존'에 가깝습니다.
"'생태법인'의 도입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재설정하는데 의미가 있어요. 지금까지는 인간이 비인간을 이용할 자원, 보호해야 할 존재로 봤죠. 이건 평등하지 못해요. 동·식물에게 생태법인을 부여하면 그들도 법적인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되고, 이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평등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어요." 조약골 핫핑크돌핀스 공동대표는 생태법인 도입이 인간중심적인 시각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웠던 남방큰돌고래의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뻐했습니다.
남방큰돌고래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주 연안에서만 서식합니다. 하지만 개발과 매립으로 인해 서식지가 파괴되며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죠. 과도한 돌고래 선박 관광으로 인한 부상과 스트레스, 해상풍력발전단지 사업으로 인한 진동과 소음, 낚싯줄과 폐어구로 인한 부상은 남방큰돌고래를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남방큰돌고래는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남방큰돌고래에게는 주거권, 행복추구권, 생존권 등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고, 그들의 주거지 보존보다는 사람의 이윤 추구가 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조 공동대표는 "남방큰돌고래에게 생태법인이 주어지면 사람의 이윤 추구보다는 돌고래의 권리가 우선시될 수 있어요. 남방큰돌고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 생기는 것이죠. 돌고래들의 삶의 질이 달라질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남방큰돌고래가 무사히 생태법인 1호로 인정된다면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습니다. 동·식물과 자연도 법적인 권리를 가지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방큰돌고래가 생태법인으로 인정된다면 추후 생태적 가치가 높은 오름, 곶자왈 등 다른 대상으로도 생태법인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해야할 때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