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각으로 2일 새벽. 프랑스와 벨기에의 2024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24) 경기가 시작합니다. TV 화면에는 양 국가 국기와 함께 'Hisense(하이신)'이라는 로고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경기장 광고판은 'BYD(비야디)'라는 문자로 도배가 됐습니다.
'Hisense'은 중국 가전업체, 'BYD'는 중국 전기차업체 로고입니다. 포르쉐 아우디 베엠베 벤츠 등이 있는 '자동차의 나라'에서 열리는 대회 광고판을 중국 전기차 기업이 차지했다는 점도 이채롭습니다. 특히 비야디는 지난달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 추가관세를 발표하면서 촉발된 통상분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기업입니다. 3년 전에 열린 유로 대회 자동차 스폰서는 독일 대표 완성차업체 폴크스바겐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경기장 광고판을 가장 오래 차지하는 문자는 ▷스마트폰 제조업체 'VIVO(비보)' ▷온라인 결제업체 'Alipay(알리페이)' ▷전자상거래 업체 'AliExpress(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기업 로고입니다. 비보는 노키아와 특허 분쟁으로 독일에서 철수했다가 최근 재입성한 바 있습니다.
유럽축구연맹(UEFA)에 따르면 이번 대회 글로벌 스폰서 13곳 중 5곳이 중국 기업입니다. 단일 국가로는 가장 많습니다.독일은 스포츠용품 업체 아디다스와 슈퍼마켓 체인 리들(Lidl), 작업용 의류를 만드는 엥겔베르트 슈트라우스가 참여했습니다.미국 기업은 코카콜라와 부킹닷컴 등 2곳입니다.
결국 유로2024는 독일에서 열렸지만 광고시장은 중국 기업이 점령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스포츠 중계로 경기를 보는 축구팬 뇌리에 중국 기업만 박히는 셈입니다.
스포츠 중계를 보는 한국인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 듯합니다. 독일 정부 대변인을 지낸 언론인 벨라 안다는 시사매체 포쿠스 기고에서 "미래를 대표하는 독일 기업은 어디 있나. 우리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완전히 잃었나"라며 한탄했습니다.
중국 기업이 어마어마한 비용을 댄 덕에 유로2024 광고판을 점령한 듯합니다. 전문가들은 국내외 축구팬을 겨냥한 홍보와 이미지 개선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라고 짚었습니다. 스포츠경제학자 클라우스 브뤼게만은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시장 확보와 이미지를 위해 스포츠 워싱(스포츠를 통해 부정적 이미지를 세탁하는 방법)을 하는 게 분명하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