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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산동 이자까야 Jul 22. 2024

연인의 탈을 쓴 착취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구속하고, 일방적으로 착취한 뒤, 그로 인한 금전적 이득을 보는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사라진지 오래된 '주인과 노예'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적합해 보이는데요. 연인의 탈을 쓰고 상대방을 노예처럼 착취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면 믿기시나요? 믿기지 않겠지만, 가장 친밀한 관계의 연인이 성·신체·정신적 폭력을 동반해 상대방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요구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유튜버 쯔양

지난 11일 유튜버 쯔양이 전 연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폭행 및 협박, 금전 피해를 당한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교제 폭력'의 심각성이 다시금 대두됐습니다. 쯔양이 밝힌 과거는 폭력과 협박, 착취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쯔양은 대학 시절부터 만나왔던 전 연인이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 이별을 통보했더니 "불법 촬영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헤어질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쯔양은 전 연인으로부터 반복적으로 폭행 피해를 당했고, 그가 근무하던 유흥업소에도 호출돼 잠시 일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방송 일을 시작했고, 그 수익 역시 모두 빼앗겼죠.


쯔양의 전 연인은 불법 촬영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과 신체적 폭력을 무기 삼아 유흥업소에서 근무하도록 강제했고, 방송 수익을 모두 빼앗는 등 경제적 이득을 취했습니다. 쯔양과 같은 연인 간 '경제적 착취'는 이미 교제 폭력의 한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는데요. 한국여성의전화 '2023 상담통계 분석'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 내 파트너에 의해 발생한 폭력 피해 상담 사례 2636건 중 경제적 폭력은 450건으로, 전체 피해 유형의 17.1%나 차지했습니다. 신체적 폭력 1945건(73.8%), 정서적 폭력 1523건(57.8%), 성적 폭력 346건(13.1%) 못지않은 수치입니다.


문제는 성적 폭력과 경제적 폭력이 결합된 형태로도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쯔양의 전 연인도 "돈을 벌어오라"며 억지로 유흥업소에서 근무하도록 했죠. 게다가 최근에는 개인 방송이 활발해지며 연인과 배우자에게 성인 방송, 성인물 촬영 등을 강요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2021년부터 아내를 자택에 감금하고, 성관계 영상 촬영과 성인방송 출연 등을 강요해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군인 남편 사건이 단적인 예입니다. 남편 A 씨는 아내 B 씨가 본인의 요구사항을 거부할 때마다 "나체 사진을 장인어른에게 보내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 씨는 B 씨의 방송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했는데, 이 모든 행위가 오로지 '돈벌이'를 위한 것이었죠. 음란물 유포와 감금, 협박 혐의로 구속 기소된 A 씨는 얼마 전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비슷한 사건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지난해에는 BJ로 활동하는 아내에게 남편이 "노출이 심한 옷을 착용하라"고 강요한 뒤, 이를 거부한 아내와 다툼이 생기자 아내를 감금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남편은 수억 원의 빚을 갚기 위해 노출 방송을 종용했고, 벌어들인 수익은 전부 남편이 관리했죠. 2020년에는 지적장애가 있는 여자친구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고, 성매매로 벌어들인 돈 2600만 원을 갈취한 20대 남성이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19년에는 수년간 아내를 폭행·협박한 뒤, 인터넷 채팅사이트를 통해 모집한 남성과 12번에 걸쳐 대금을 받고 성매매를 강요한 남편이 징역 10년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성 착취를 수단으로 삼아 경제적 폭력을 저지른 가해자들은 신체·정신적 폭력으로 피해자를 무력화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듯 교제폭력은 한 종류의 폭력에만 국한되지 않고 복합적인 양상을 띱니다.


교제폭력은 현행 스토킹처벌법이나 가정폭력처벌법의 대상이 아니어서 이들 법이 규정하고 있는 접근금지, 가해자·피해자 분리 등 긴급조치가 불가능합니다.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만큼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꾀고 있어 보복 위험이 크지만 피해자 보호조치가 미흡하죠. 또 일반 폭행 사건과 같이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돼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을 할 수도 없습니다. 교제폭력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교제 폭력을 독립된 범죄 유형으로 보고 별도의 법률을 만들어 대응하기 위한 법안들은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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