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이번 주 이거 아나에서 소개할 시사상식 용어를 '사도광산'으로 정했어요. 지난달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이 신청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컨센서스(전원동의) 방식으로 결정했습니다.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소식에 한국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는데요. 사도광산에는 한국의 아픈 역사가 서려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이가타현 북서쪽에 있는 제주도 절반 크기의 사도 섬에는 일본 최대의 금광이 있습니다. 17세기 당시 세계 최대의 금 생산지였죠.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에 대해
"19세기 중반 막부 종언까지 이뤄진 전통적 수공업 금 생산 유적"이라는 점을 강조해 유네스코 등재를 밀어붙였습니다. 기계화가 도입되기 이전에 수작업으로 금을 채굴했다는 사실을 부각한 것인데요. 일본은 이를 반영해 유산 명칭도 '사도광산'이 아닌 '사도섬의 금산(金山)'으로 붙였습니다.
문제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이 사도광산의 강제노역에 동원됐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이 본격화한 이후 구리, 철, 아연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사도광산을 이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제강점 말기인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인 약 1500명이 강제동원 됐습니다. 한국 정부가 피해 판정을 한 사도광산 피해자는 148명이며 그중 9명이 현지에서 사망했습니다. 피해자 중 30명이 진폐증, 15명은 폐 질환을 앓았죠. 광부 상당수가 갱 내에서 먼지를 많이 마신 탓에 고통을 겪었습니다. 사도광산에서 조선인이 강제로 노역했다는 연구결과는 많지만,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이러한 역사를 외면하고자 유산 대상 기간을 에도 시대(1603~1868년)인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해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졌던 20세기를 기록에서 빼려는 꼼수를 부렸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8년부터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시도해왔습니다. 2022년에는 강제동원 문제를 피하려고 에도 시대로 한정해 세계유산 후보로 신청했지만 한국 정부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유네스코는 신청서 내용 미흡 등을 이유로 심사를 유보시켰죠. 2023년 일본은 자료를 보강한 뒤 세계유산 후보 재신청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세계유산위원회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전체 역사를 설명하라'면서 등재 보류를 권고했죠.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이 모두 동의해야 가능합니다. 한국은 세계유산위원회의 위원국으로써 반대표를 예고하며 일본 정부를 압박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이 등재에 동의하면서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이뤄졌습니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 설치와 추도식 매년 개최 등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강제동원 역사를 숨기지 않겠다는 조건 하에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하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일본 정부의 약속은 믿을만한 것일까요. 일본 정치권의 과거사 인식 오류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5년 하시마(군함도) 탄광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사례는 아직까지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죠. 당시 일본은 우리 정부와의 협상으로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강제노역 사실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정보센터 건립을 약속했죠. 하지만 정보센터는 군함도 근처가 아닌 도쿄에 설치됐고,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한 정보에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는 내용이 기재됐습니다. 일본 정부가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인데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유산위원회도 강한 유감을 표명했지만 지금까지 수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사도광산의 현지 전시실에는 조선인 강제노동과 관련해 '모집' '관 알선' '징용' 같은 표현은 있지만 '강제연행'이나 '강제동원' 등 강제성이 포함된 용어는 쓰이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일본이 자랑하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매우 기쁘다"면서도 전시시설에 강제노동 관련 내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한국에서 나오는 데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